초치기 직장인의 피아노 연습 패턴은 무엇이 좋은가
: 벼락치기? 또는 가랑비에 옷 젖는 30분?
지난 토요일 비 오신다고 낮부터 김치전에 막걸리를 한 잔 마시고 기나긴 수다를 나누다 집에 돌아와, 아무래도 주중에 피아노 연습을 못한 데 대한 죄책감에, 아직 취기가 살짝 돌아 운전은 못하고, 버스 타고 학원에 가서 연습을 하는데, 정말 하나도 집중이 안 돼서 손가락 방황만 하다가 또 후회를 남기며 돌아왔다. 차라리 오늘은 맘 편하게 쉬고, 내일 종일 연습하면 어땠을까 하는.. 수영도 너무 피곤한 날은 물에 빨려들어가 숨만 헉헉대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또 담날은 수영 끝나고 아예 아침 9시부터 학원으로 들어가 점심 먹기 전까지 두어시간, 점심 먹고 오후에 또 두어 시간, 저녁 먹고 또 두어 시간 하루만에 6시간을 연습했더랬다. 그랬더니 숙제 차원으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을, 당장 나아지지 않는데도 주구장창 연습하는 건 다소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고, 그래서 다른 쉬운 피아노곡집('오페라 아리아'라는 편곡집인데 나름 재미가 쏠쏠하다)을 후루룩 넘겨보고 그중에 하나 슬며시 눌러보고, 자리 익히고, 내친 김에 곡으로 좀 다듬어보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그럴 때면 시험기간에 청소가 재밌는 것처럼, 또 이 곡이 슬슬 재밌어진다 ㅠㅠ). 그러다 보면 등짝이며 허리가 슬슬 아파오고, 급기야 피아노보다 핸드폰에 가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다시 악보 덮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 돌이켜 보면 시간을 많이 투자한다고 해서 연습할 부분을 해결하거나 만족스러운 연습이 되지는 않더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초치기 직장인의 피아노 연습은 도대체 어때야 효율적인 걸까 고민하게 된다.
직장인이고 운동까지 겸하다 보니 피아노 연습 시간을 낸다는 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매일 30분, 1시간은 꼭 피아노 앞에 앉아야 한다는 것과,
어차피 피곤한 중에 피아노 앞에 앉아 있어봐야 그저 손가락 운동밖에 되지 않을테니, 가능한 때 각 잡고 앉아 몇 시간이고 악보를 잘 체득하는 게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 사이의 방황이랄까.
가랑비에 옷 젖게 하자니 피곤함이 일상에 덕지덕지이고,
벼락치기로 하루를 피아노에 올인하자니 (나이들어 더 현저해진) 집중력 저하와 담날의 관절염, 또 찾아올지 모를 건초염이 두렵다.
어쩌면.
지금 내 생활이 너무 번잡스러운 건 아닌지, 피아노를 위해 필요없는 것들은 정리해야 하는 건 아닌지도 질문해 보아야 한다. 새벽 4시 반에 나서야 하는 수영이나, 근력을 세우고 꾸준한 스트레칭을 필요로 하는 발레나, 매일매일의 도시락 걱정이나 가끔 의무감에 찾아가는 도서관이나.... 확, 그냥, 회사를 때려치면 모두가 해결될 듯한데 ㅋㅋ ^^
2021. 5. 17.
덧붙여.
너무 단점만 쓰고 나간듯해서, 장점은 없나 하고 기억을 더듬었더니
30분 매일 연습하고 났더니 처음에는 이번 생에는 도저히 구현되지 않을 것 같던 구간이, 특히 2, 4번, 3, 5번을 이용한 연음의 트릴이 한 2주쯤 후 소리가 나는 걸 느꼈다, 역시 낙숫물이 바위에 흔적을 내는 법이다.
반면 하루종일 다른 일정 없이 피아노에 올인하는 날은, 연습의 압박 없이 기타 등등의 곡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물론 그 곡의 수준이라는 건 대개는 몇 번 쳐보면 그래도 나름 노래처럼 이어지는 곡이다 보니 실력 향상을 위한 피아노 연습이기보다는 온전히 지금의 피아노 실력으로 즐기는 곡들이랄까, 오페라 아리아가 그렇고, 다소 쉽게 편곡해놓은 프리미어 피아노 명곡집이 그렇다. 단순하지만 아무 스트레스 없이, 혼자 즐기며, 감상하며 칠 수 있음이 참 행복한 일이긴 하다. 피아노를 시작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붙잡고 있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정말 소중한 행복이다. ㅎㅎㅎ (쓰다보니 또 마음이 간간질간질 매우 즐겁다, 우히히)
아, 그냥 생각없이, 이러나저러나 가능한 때 피아노 앞에 앉는 것이, 뻔하지만 결국 정답이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