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금방 피아노를 그만두는 이유
: '죽음의 무도'를 치게 되느냐, 포기하느냐
요즘 들어 피아노가 주된 관심사이다 보니, 가끔 들여다보는 남의 블로그나 유튜브 역시 피아노와 관련된 것이 많다. 그중에서도 꾸준히 들여다보는 블로그가 있으니 그중 한 주인은 정년퇴임 이후 집에서 피아노 치는 낙으로 일상을 보내시는 분이며, 또 한 사람은 피아노 강사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세미나를 주최하고 있는 피아노 열혈에 독설가이신 분이다. (첫 번째 분은 스스로 피아노를 독학하면서 그 일지 또는 본인의 깨달음을 블로그에 올리는 중이며, 또 한 분은 피아노를 가르치는 분으로서 피아노 학습자의 오류나 또는 가르치는 사람들에 대한 팁, 본인의 피아노 연주에 대한 생각 등을 올리는 중이다.)
그런데 이 두 분이 성인이 피아노를 배우는 데 대해서 공통되게 이야기하는 것 중에 하나는 성인이 피아노를 금방 포기하게 되는 주요 원인이 성인의 눈높이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극단적으로는 "음악을 자주 듣지 말아라"는 역설까지도 도출하게 된다. --;;;
이게 왜 그런고 하니 성인(물론 성인도 20대냐 50대, 60대냐에 따라서도 큰 차이가 있겠지만)은 아무래도 집중력과 손가락의 유연성이 아동/청소년기와는 현저하게 다르고(물론 손가락 길이가 더 길다는 거 하나는 유리할까 ^^;;) 그래서 배우는데도 시간이 아동보다는 오래 걸린다. 그럼에도 그동안 들어왔던 음악이나 치고 싶은 연주곡은 그 실력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곡들이며, 본인의 연주에도 비슷한 잣대를 들이대게 된다(나처럼 말이다. ㅠㅠ). 그럼 당연히 좌절하고 애꿎은 손가락이며 죽어가는 뇌세포들을 탓할 밖에.
게다가 매일 하루 한 시간은 꼬박꼬박 학원에서 연습하는 학생들 대비하여 매일을 그렇게 피아노에 투자하는 성인이 좀처럼 없다는 거다. 그러면서 피아노를 친 지 몇 달이 되도록 같은 악보만 붙잡고 있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그 곡에 대한 집중도나 흥미가 떨어져 완성하기보다는 끝내려 노력한다는 등의 이야기다. 그래서 아무리 연습해도 들어왔던 연주곡만큼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세계를 찾거나 또는 포기한다는 등의 이야기.
요즘 들어 우리 연습실 생태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지난 1월에는 퇴근 후 언제 가더라도 연습실 좀비인 입시생 A만 있고, 연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칼퇴근 후 6시 반쯤 도착했는데 중앙홀에 불이 꺼져 있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연습하다 보면 종종 들리던 레슨 피아노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걸 보면 아마도 1월에는 강습이나 연습생이 거의 없었던 것 같고, 그리고 최근에는 저녁에 다른 레파토리의 음악들이 들려오는 걸 보면 또 새로운 분들이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새해 들어 새로운 결심과 함께 피아노는 그만두신 분들이 다수인 듯하고, 또 새해 들어 새로운 각오로 피아노 앞에 앉게 되신 분들도 다수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생태계는 여지 없이 돌아가는 중이다)
나는 어떻게 되려나.
앞서 두 분의 블로거가 지적한 대로 내 눈은 높을 대로 높아져 있고, 유명 피아니스트 또는 유튜브에 올라 있는 연주곡들을 보면서 그 분들의 기교와 감성에 감탄하며 나는 언제 그럴 수 있으려나 조바심도 난다. 하루에 한두 시간씩 투자해도 별반 나아지지 않는 속도와 새 악보를 볼 때마다 까막눈이 되는 내 몇 남지 않은 뇌세포를 한탄하며 한숨으로 지새운 날도 여러 날이다. 이대로 가다가 나 역시 포기하게 되는 것일까.
그렇지만 나는 틀리더라도 건반을 눌러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즐겁다. 소리가 엉망이고 박자도 제멋대로이고, 눈이며, 손이며 제 자리 찾기도 바빠서 정신없이 쫓아다니는 지경이지만, 피아노 뚜껑 덜고 일어설 때마다 뭔가 찜찜한 구석이 한가득이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오늘 지나 내일은 0.0000001% 나아질거라 믿으며 스스로 위안을 삼는 중이다. 조금 더디더라도 나아가기는 하니까.
나의 목표는 생상의 '죽음의 무도'를 연주해 보는 것이다.
아직도 김연아의 배경음악으로 더 유명한 이 곡은 피아노로 연주하게 되면 오금이 저리는 감성과 처절한 애절함이 있다. 오죽하면 제목이 죽음의 무도이겠는가. 이왕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런저런 실체를 깨달아 가는 중에도 아직 피아노를 떨치지 못하고 매여 있는바, 가능하면 죽음의 무도는 한 번쯤 꼭 연주하고 싶다. 그래서 나이 마흔을 한참 넘어 체르니부터 다시 시작해도 충분히 본인의 의지에 따라 지속하고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여주고 싶다. 흠, 또 이렇게 블로그에 쓰다 보니 또 그런 마음이 간절해진다.
오늘 자기 전에는 일기와 함께 불끈 주먹이라도 쥐어봐야겠다, 할 수 있다!며.
(오늘도 피아노 앞에서 한숨 쉬는 초보 성인들 화이팅~ 기죽지 말고, 포기하지 말자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