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이 필요해.
: 예민한 피아노, 그보다 더 예민한 나.
레슨 받는 피아노는 스타인웨이 그랜드다. 처음에는 그 타건감과 소리가 너무 신기해서 레슨 갈 때마다 둥둥둥 쳐보곤 했고, 뭔가 반짝이는 피아노 자태에 레슨방에 들어서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그런데 스타인웨이에서 치다 보면 가끔 소리가 먹히거나 삑사리가 나거나 손가락이 튕겨나가는 현상이 발생했다. 연습실이나 집에서 치던 업라이트와는 다른 느낌이었달까. (업라이트보다 스타인웨이 건반이 훨 가벼웠다) 뭐, 아마도 익숙하지 않은 탓이겠거니, 익숙해지면 해결되겠거니 했더란다. 그런데 벌써 1년이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도 그 현상은 여전했다. ㅜㅜ
급기야, 어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은 제외하고는 나름 곡을 만들었다 생각했는데, 레슨에서 또 소리가 먹히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면 나는 멈추고 그 부분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레슨하는 중이니 틀린 데 대한 긴장과 틀리지 말아야지 하는 조급함에 다시 멈칫 거리고 틀리고, 아... 그럼 그때부터 망하게 된다. 부드럽던 앞 부분의 연주도 긴장과 떨림 앞에서는 초딩의 소리와 무겁고 둔중한 소리로 바뀌고 만다, 된장. 망했다. 선생님한테 그래도 연습한 거 티를 내고 싶었는데, 또 망했다. 게다가 체르니는 손도 대지 못해, 같이 더듬더듬 악보를 읽는 꼴이었는데 말이다. 된장된장된장.
쌤은 잠시 멈추게 하고, 한숨을 고르게 하신다. 그리고 다시 쳐보자며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하지만, 나는 안다. 참고 계심을... 나도 일케나 짜증나는데, 얼마나 답답하실까. ㅠㅠ
"왜 자꾸 소리가 먹히는지 모르겠어요." 나의 항명이다.
"이 피아노가 좀 예민해요. 그런데 수미님은 더 예민하신 거 같아요, 자신있게 쳐보세요."
그러게 말이다. 왜 나는 피아노보다 더 예민해서리, 안 그래도 되는데 주눅들고, 힘 빠지고, 혼자 좌절하며 몸부림치는지. 선생님의 평이 맞다, 자신감이 필요하다.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는 습성 덕에 자신감은 늘 만땅이다. 수영을 그리 오래 했음에도 남들보다 속도가 늦는데도 "이 정도면 됐지" 하고 발차기를 안 차고, 조금 더 노력하면 근력도 키우고 자세도 예뻐질 만한데도 근거없는 자신감에 발레 역시 그 수준이다. 일도, 취미도, 요리도 이 정도면 됐다고 스스로 잘난척은 잘도 하면서 왜 피아노 앞에서는 왜 자신감이 저 바닥인지 말이다. 게다가 선생님 앞에서의 나는 정말 꼬꼬마보다 작아 저 아래 어디쯤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ㅠㅠ
참으로, 피아노 늘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요즘이고, 亡feel(망삘)에 젖기 일쑤인 요즘이라서 더 그런가. 우띠, 레슨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모과님 댓글에 "망했다"며 한탄이나 올리고. 집에 와서도 아무 것도 못하고 잠시 앉아 있다가, 우울해져 슬그머니 이불로 직행했다.
맨날 우쭐대던 나의 근자감은 다 어디로 갔나. 우띠.
2021.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