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을 누르는 연습
: 문자 그대로, 건반을 누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도도도도, 레레레레, 미미미미, 파파파파...
요즘의 연습이다. 건반을 누르는 것도 연습해야 한다는 걸 최근에 레슨하면서 깨달았다. 사실 '건반을 누른다'는 표현은 결국 소리를 만든다는 의미일까. 그러면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건반을 눌러 소리를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원장쌤과의 수업에서 경험하게 된 레슨 방식이 몇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건반 누르는 연습이다.
먼저는 익숙하지 않거나, 뇌에 입력되지 않아 바로 짚어지지 않는 마디를 수업시간에 짤 10번을 연습한다. 원장님은 옆에서 1, 2, 3, 4.. 숫자를 세고, 자 두 번 남았어요, 이제 마지막~ 을 외치실 때까지 그 마디를 10번 반복한다. 그러면 참으로 신기하게도 암만 연습해도 버벅거리던 부분이 어느새 물 흐르듯 짚어진다. 반복의 힘이며, 또 하나는 원장쌤이 옆에 계시니 틀리지 않고 기대에 부응하려고 초절정 집중력을 발휘한 까닭일테다. 이 반복은 음악을 만든다기보다 단순히 건반 누르는 연습이 모두이다. 박자도 모두 지키고, 손가락은 당연히 세워서 누르고 번호도 맞추고 거기에 윗소리가 안 나면 윗소리를 주문하시는 정도이다. 그렇게 딱 10번을 한 마디만 또는 한 프레이지만 연속해서 치면, 어떻게든 손에 익어진다.
두 번째는 한 마디가 아닌 마디 내 두어 박 정도의 구문 역시 같은 방법이다. 이 경우는 손가락 훈련이랄까. 가야 하는 길을 정확하게 손가락에 입력시키는 연습이고, 대부분 손가락이 꼬이는 부분을 해결하거나 소리가 잘 나지 않는 3, 4번에 대한 연습이다. 역시 10번의 반복이 꼬박 이어지고, 때로는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우왕~
요즘에는 옥타브를 누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도도도도, 레레레레, 미미미미, 파파파파, ~ 마치고 나면 옥타브 도레미파솔라시도 도시라솔파미레도... 이것도 반복효과를 거두고 있는데, 처음에는 옆 건반을 건드리고, 소리도 뭉툭하기 일쑤였으나 이제 한 열흘 정도 연습을 거듭하니 이제 옆 건반을 건드리지도 않고, 손에 힘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역시나..
이렇게 건반만 누르는 연습의 힘, 그게 반복되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몸소 경험한지라, 요즘에는 연습실에 가면 먼저 건반을 눌러 소리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있다. 게다가 요즘 연습하고 있는 곡이 슈만의 '겨울'인데 윗소리를 뚜렷하게 만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악보를 피아노에 옮기는 것도 하지만, 동시에 소리 만들기도 무척이나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자니, 물론, 한없이 더디기만 하다.
엊그제 레슨 중에는 잠깐 딴얘기가 나왔는데, 그 역시 건반을 누르는 손과 소리에 대한 얘기였다. 내가 손에 힘을 꽉 쥐고 있어서 그 힘이 건반으로 전달되지 않는단다. 그래서 더욱 힘을 빼야 한단다. 처음 악보를 읽으면서는 손에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연음을 계속 짚고 있어야 하고, 손가락 번호도 찾는 중이라 손은 건반 위에서 딱 굳어 있기가 일쑤다. 헌데 악보가 익숙해지면 그 손이 부드러워지고, 동시에 소리도 부드러워지기 마련이다. 헌데 그날은 유난히 건반 위에 손이 더욱 굳어 있어 소리가 손에 붙들려 있는 꼴이랄까. 그러면서 내가 운동할 때에도 몸에 힘을 빼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를 했고 그게 연이어 피아노도 그렇다는 얘기.. 다시금, 건반을 누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언젠가, 피아노는 막노동이다는 평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게 그저 힘들다는 표현인가, 하고 넘겼으나, 요즘 소리를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만한 노동이 없겠구나 여겨진다. 부단히 손가락과 몸과 시선과 뇌를 움직여야 하고, 무한한 반복으로 악보를 몸에 새겨놓아야 한다. 게다가 하루라도 피아노 앞에 앉지 않으면 그동안 새겨뒀던 몸의 기억은 한참 뒤로 물러나버린다. 원하는 곡을 만들겠다면 무한한 막노동에 대한 각오 역시 다져야 할테다.
2023.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