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온의 성인 연주회
: 소소하지만 작은 행복
연습실을 빌려 쓰고 있는 라온에서는 6개월에 한 번씩 연주회를 한다. 어린이들은 어린이들대로, 성인은 성인들대로 시간을 정해 그동안의 연습곡을 그랜드피아노에서 연주하곤 한다. 그 시기가 되면 원장님은 나에게도 한 곡 연주하시라고 얘기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후다닥 독방 연습실로 피신한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 생각해보니 기분이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다. 또 만약에 이 세종에 나의 가족이며 지인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내가 어떤 곡을 연습하고 어떻게 곡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평일 저녁에 잠시 짬을 내어 만드는 연주회를 보겠다고 서울에서, 광주에서 올라올리가.... 절대 만무하다. ㅠㅠ
헌데 같은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분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또 관객으로는 어떤 분들이 오나 궁금하기도 해서 이번에는 관객으로 뒤꽁무니에 살짝 섰다. 두둥~ 그저 뒷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심장이 쿵쿵거렸다. 그런데 모두들 담대히 나가서 본인의 곡들을 깔끔하게 돌아서 나오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내가 다 뿌듯했다.
게다가 연습실을 함께 쓰는 까닭에 나는 단순한 관객이 아니라 응원자가 되어 있었다.
- 연습실에서 항상 듣던 곡인지라, 늘 머뭇거리거나 틀리던 부분이 나오면 나 역시 연주자가 무사히 넘어가기를 기도하게 되고,
- 또 첫 부분에 엉키는 바람에 멈칫하다가, 다시 하겠다고 쑥스럽게 얘기하는 연주자에게는 더 힘찬 박수를 보냈다.
- 아이와 함께 학원을 다니는 어머니는 중간중간 아이와 눈을 맞춰가며 연주했고,
- 남자친구가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며 순서를 미룬 예쁜 언니의 초조해 하는 모습에도 싱긋 미소가 지어졌다.
- "생각보다 잘하는데~" 놀라워 하는 친구들을 보며, 뭔가 내가 으쓱해졌고
- 3번방 입시생이 머리를 질끈 묶고 연주할 때에는, 매일의 고된 연습을 아는지라, 연주홀의 여느 피아니스트보다 더 멋있게 보였다.
연주회에 올려진 곡 수준이 초급부터 쇼팽의 환상곡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웠던 만큼 그들의 감흥과 이야기도 다채로웠다. 거기에 나도 숟가락 얹어 즐거움을 떠먹는 기분이었달까. 어찌 보면 소소하기 그지없는 한 시간이었지만, 연습실 갈 때마다 그 분들의 긴장이 전이되어 한동안은 열심이었다. 그리고 즐거웠고.
언젠가 나도 그렇게 가족이며 친구에게 예쁜 곡을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2019. 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