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en Camino
카미노에서도 간장종지만한 마음이라니.
날라리 빵꾸인생
2024. 8. 9. 23:14
: 그래도 알아차렸다, 나의 못난 마음을.
길에 새로운 사람들이 많아졌다. 주고받는 “부엔 카미노~”의 느낌도 조금은 어색해진 분위기랄까. 레온이나 폰페라다, 또는 오세브레이로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겠다. 그려서인가. 가방은 깨끗하지만 무거워보이고, 신발도 먼지없이 뾰샤시하고, 반바지 아래 드러난 종아리도 허여멀겋다. 무엇보다 길을 걷는데, 다들 신나 있는 게 느껴진다.
뭔가 마음이 뾰루퉁해졌다. 나도 시작할 때는 뽀샤시했다고, 투정하는 마음이랄까. 동시에 나는 생장에서부터 600킬로를 넘게 걸어왔다구. 당신들이 피레네를, 폰세바돈을 어떻게 알겠어 하는 우쭐한 마음도 생겼다.
아, 얼마나 못난 마음이며,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우리는 그저 길 위를 지나가는 한 순례자에 불과한 것을. 얼마를 걸었든, 어디를 가든, 또 얼마나 먼지에 뒤덮였든 우리는 그저 그 순간에, 그 길 위에 선 자들일 뿐이다. 각자의 이유와 목표와 상황은 그저 각자의 몫일 뿐, 우리는 길 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 더 살았든, 더 가졌든, 더 말끔하든 상관없이 우리는 그저 인생의 행로를 걷는 자들일 뿐이다. 우쭐할 것도, 자만할 것도, 또 위축되거나 바굴해질필요도 없다. 우리는 그저 묵묵히 함께 걸어갈 뿐이다.

2024.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