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작별
: 마지막 날까지 이름조차 여쭤보지 못했다, 그래서 "손가락이 긴 피아노 선생님"으로 저장
피아노는 계속 연습하고 있고, 모차르트를 힘겹게 익혀가고 있는데,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인지 여기에 기록할 생각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선생님이 마지막 수업이라고 고하셔서, 깜짝 놀라는 마음, 헤어져서 슬픈 마음, 그럼에도 참 여러 가지를 알려주신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오늘은 숙제도 뒤로 미루고 선생님의 가르침을 남기려 들어왔다.
손가락 선생님과는 내 선택으로 낭만곡이랑 차이콥을 주로 하다가, 결국 선생님의 추천으로 모차르트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외면했던 내가 무색하게 모차르트의 매력을 한층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특징인, 그러니까 악보 보는 건 쉬우나, 맛을 내려면 몇 년을 피아노 앞에 앉아 있어도 가능할까 싶게 손가락 돌아가는 게 어렵고, 그만큼 소리를 내는 것도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수업마다 소리를 매 화음 정확히 만들어내고 손가락에 힘을 빼고, 건반에서 깔짝 대는 습관을 고치는 데 시간을 많이 들였으며, 돌이켜보면 할 때는 힘들었고, 한 시간 내내 악보는 못 보고 소리만 만드는 날도 있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이만큼 소리가 분명하고 경쾌해진 건 또 선생님의 공이리라. 잔소리쟁이라고 투덜대었으나, 또 그래주어서 너무도 고마운 마음이다.
"건반 위에서 손이 자유로워야 해요."
"준비되지 않으면 치지 마세요."
"건반을 내려칠 때만 손가락에 힘이 있고, 곧바로 빼서 손을 가볍게, 항상 주의하세요"
"한 음을 정확하게 내는 게 먼저입니다."
"속도에 끌려가지 마세요, 그건 소음입니다."
"지금보다 느리게 쳐도 틀린다면, 그건 더 느리게 쳐야 한다는 거예요."
"건반을 느끼세요, 건반과 손은 하나가 되어야 해요."
"경첩! 경첩!." (이 무슨 암호같은 소리인가.. 나만 알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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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았을 터인데...
선생님 앞에서 긴장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상황인데, 손가락 선생님 앞에서는 내가 더욱 잘 보이고 싶었는지 안 틀리려고 손이 움츠러드는 경우가 많았고, 오히려 에라 모르겠다, 틀려도 어쩔 수 없지 하는 심정으로 치면 칭찬을 받았다. 거참, 내가 생각해도 이게 무슨 경우인지. 그만큼 손에 힘이 들어가면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는 걸 경험했달까.
오늘은 마지막 수업이어서인지 모차르트 1악장의 최종 평과 주의사항을 다시 한 번 총체적으로 짚어주었고,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조심스레 다음 곡을 여쭤보았다. 2악장, 3악장은 오히려 어려울 거라면서 다시 또 모차르트 곡을 알려주신다. 덧붙이시기를 "모차르트 하고 나면 낭만곡이 더 쉬워지실 거예요." ㅎㅎㅎㅎㅎ 그 말도 와닿는 것이, 지금 이 곡을 하면서 손가락도, 소리도, 나의 태도도 많이 변화되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선생님을 쫓아갈까 싶은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사하신다고 하니, 그것도 생각뿐이려나.
2025.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