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즐거움
: 시간 채우기보다는 집중하기
'안 되겠다' 싶어 수영을 일상에 끼워넣고 나니, 당연하게도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시간이 줄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수영이라도 하지 않으면 내 건강에 문제가 있을 성 싶을 만큼 움직임이 없는 직업이고, 게다가 지난 일이 년 동안 주말에만 수영을 했더니 허리가 삐그덕대 도저히 앉아 있기가 힘든 지점에 이르렀던 터이다.
그러자니 하루가 아주 밀도 있게 짜였다. 야근이 없는 평일을 기준으로 6시 퇴근 후 집에 와서 저녁 먹고 수영장으로 가서 8시 강습을 받고, 후다닥 씻고 나와 라온 연습실로 운전해서 이동하면 9시 반을 넘는다. 그때부터 11시 정도까지 피아노를 치다가 집에 와서 다음 날 도시락을 싸고 12시 넘어 겨우 스르르 잠이 든다. (이러한 날들이 연속 되니, 잠이 들기 전 잡생각이 사라지는 건 좋은 일이다. 잡생각이 든다기보다, 머리 눕자마자 자기 바빠 내가 어찌 사는지도 잘 모르겠는 요즘이다.)
예전에 수영을 하지 않을 때에는, 물론 야근이 많은 기간이기도 했지만, 여튼 피아노 연습시간이 하루 평균 2시간 정도였다. 그런데 그것도 하농에, 체르니에 배분하고 나면 곡 연습은 대개 1시간 정도랄까. 그런데 요즘은 그 1시간에서 또 줄어 3~40분에 불과하니 마음이 좀 조급해졌는가보다. 그래서 어느 날은 11시를 훨씬 넘겨 연습실을 나서기도 하는데, 그러면 다음 날 바이오리듬이 왕창 무너져 아예 연습실을 가지 않는 사태가 빚어져, 가능한 11시는 연습실의 마지노선으로 지키려고 한다.
여튼, 여건상 줄어든 연습시간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한창 고민이던 차에 서울대 음대 재학 중인 유튜버의 사연을 들었다. 서울대 입시를 한 달 남짓 남겨둔 시점에서 손에 건초염이 발생해, 그야말로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것 말고 피아노만 쳐야 하는 시점에 그러지 못할 큰 재앙이 생긴 것이다. 그때 본인은 연습을 줄이되, 연습시간에는 초절정 집중을 발휘했다고,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초절정 집중이라.. 입시라는 관문을 앞두고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겠고, 그 외에는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겠다 싶다.
물론, 취미생활로 시작한 나에게 '초절정 집중'할 만한 이유는 없지만, 몰입의 효과를 최대한 살려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부분 연습해야 할 마디를 선택할 때에도 가장 효율적인 부분을 찾아야겠고, 또 연습할 때에는 계이름을 읊는 것에서부터 손에 익히기까지 따박따박, 그러면서도 다시는 틀리지 않을 만큼 몰입해 각인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뭔가 연습을 전략적으로 접근하다니, 즐겁게 놀겠다고 시작한 피아노에서 뭔가 각박한 학습을 엿보는 것 같아 다소 안쓰럽기도 하나, 그게 내가 빨리 즐거워지는 방법일 테니, 당분간은 몰입과 효율성을 더 염두에 두고 연습해야겠다.
자, 몰입의 즐거움(칙센트미하이의 책이 어디에 있더라)!
2019. 9.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