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llaneous thoughts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자세

날라리 빵꾸인생 2019. 12. 18. 17:30

: 인생의 꿀잼!

최근 주최대 52시간제로 인해 야근은 결재를 받아야만이 가능하고, 공공기관인 우리 회사는 야근을 시키면 평일에 1.5배로 쉬게 해야 하니 좀처럼 야근을 허가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그게 꼭 야근까지 해야 하는 일이냐며, 관련 업무자들을 불러 일을 조정해주는(조정이지 없애주지는 않는다 ㅜㅜ) 훈늉한 회사이다. 그렇다 보니 최근 수영을 가거나 피아노 연습을 가는 날이 예전보다 2배는 많아지고, 덩달아 내 관심사는 점점 회사 일보다는 좋아하는 수영이나 피아노에 더 기울어진다. 

자, 나의 수영 얘기를 좀 하자면. 수력으로 따지자면 벌써 17~8년은 되었고, 그렇지만 회사며 다른 노는 데 집중했던지라 실력으로 따지자면 다른 사람들은 1, 2년 만에 금방 따라잡을 정도랄까. 그러나 물에서 논 그 많은 시간들 때문에 힘들여 빠르게 가는 법은 잘 몰라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냅다 쉬지 않고 유유히 유영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이랄까. 그거 하나 믿고 괌 3Km 섬횡단도 다녀왔고, 오픈워터에서 내 몸 하나는 건사하며, 어디 가서 수영 못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 여름에 잠시 멈췄던 강습을 다시 시작하면서 졸지에 두 번째 순서로 몰렸다. 여기서 순서 이야기를 하는 건 그만큼 수영강습에서 순서의 압박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일단, 수영강습자들이 10명 있다면 강습자들의 순서는 잘하는 사람, 빠른 순서대로 서열이 정해진다. 달려나가는데 누군가 앞서 가는 사람이 나보다 느리고, 그럼에도 그를 추월할 수 없다면 본인도, 앞서가는 사람도 답답한 노릇이기에 순서는 대부분 빠르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정된다. 기존에 잠시 쉬기 전 나는 교정반에서 항상 끝자락이었다. 강사님이 뭐라 하던 빠르기보다는 우아하기를 강조하며 발차기는 전혀 하지 않고 물살을 가르는 수영만을 고집했다. 그런데 이번 강습반은 상급반이다. 기존에 다니던 교정반은 자리가 잘 나지 않았고, 당시 수영하고 싶어 몸이 달았던 나는 상급반으로 등록했는데, 아무래도 교정반과 상급반의 수준차가 있기는 있었던 모양인지, 결국 앞으로 밀리고 밀려 두 번째 자리에 서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나는 빠르게 수영할 줄 모른다. 그저 어케어케 물을 잡고, 끌고, 탈 뿐이다(이건 수영하시는 분들만 이해할 듯한 --;). 발차기로 추진을 받아야 하는데 발은 슬쩍슬쩍 한두 번 차고 균형을 유지하는 데 더 집중한다. 그나마 자유형은 맨날맨날 해대서 사실 속도도 뒷사람과 차이가 좀 나는지라 걱정이 없는데, 배영은 매번 뒷사람에게 잡히는지라 거의 죽을듯이 발차기를 하고 숨도 못쉬고 허둥대며 내달리고 헉헉댄다. 더 망할 건, 수영이라는 것이 긴장해서 몸에 힘이 들어가거나 자세가 무너지면 금방 속도도 뭐고 엉망이 되는데(이건 피아노랑 똑같다. 피아노와 비슷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러면 또 강습선생님의 호통이 기다린다, 왜 그 모냥이냐고... 할수록 스트레스만 쌓이고, 야단만 듣고, 배영이 정말 싫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뒷자리로 물러서면 또 자유형, 평영, 접영에서 내 속이 터진다. 방법은 배영의 기술을 좀 더 익혀 속도를 늘리는 것뿐. 그래서 이제는 강습 전에도, 강습 끝나고 나서도, 혹여 자유수영을 가서도 주구장창 배영만 연습한다. 유튜브나 카페에서도 배영 관련한 영상만 찾아보고, 오가는 선배들 붙잡고 내 문제가 무엇인지 꼬치꼬치 캐묻는다. 

한 두어달 지났으려나? 사실 나의 배영은 별반 나아진 게 없다. 롤링도, 발차기도, 호흡도, 물잡기도 매번 속도를 낼라치면 예전으로 돌아가버리는 상태이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이 꽤 재밌더라 말이다. 매번 내 자세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점검하고, 속도는 또 달라졌는지 살펴보고, 그럼에도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하고 찾아보고, 자세를 바꿔보는 등 조금이라도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게 무척이나 재밌었다. 게다가 한 바퀴라도 제대로 다녀왔다 느껴지만 그 뿌듯함이란.... 만사를 가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엊그제부터는 자유형도 다시 살펴보기로 했고, 대략 뒤처지지 않는다 생각했던 접영이나 평영도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고민해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자니 이제 내게 수영 시간은 그냥 좋아하는 물놀이에서 도전과 성취라는 양념이 더해져 더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오스카 와일드가 그랬던가,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고. 나는 그에 반만 동의하련다.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겠지만,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건 인생의 꿀잼이 될 거라고. 사실 피아노는 이제 시작하는 수준인지라 해야 할 게 산더미이고 조금 더 나아지는 게 별 의미 없겠지만, 그래도 언제나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게 더 즐거운 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아고나, 인생 너무 재미져서 큰일났다. 이러다 죽기 싫으면 어쩌나.. ^^

2019.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