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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연습은 왜 하는가

날라리 빵꾸인생 2020. 7. 10. 17:18

: 노래방에 가는 사람들에게 왜 가는지 묻지 않는 것처럼,
: 내가 피아노 연습실에 가는 이유 따위 묻지 말았으면 좋겠다.
: 그저, 놀러간다. 룰루~ 

일주일에 저녁 약속은 하루만 잡기로 한 지 좀 된다. 나는 퇴근 후가 본격적인 내 일상의 시작이고, 도시락도 싸고 피아노 연습도 하고, 도서관에 반납 전에 책도 읽어야 하고, 간간히 텃밭도 살펴봐야 하고 집안일이 밀리면 또 스트레스인지라 챙기자면 정말이지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아, 정말 조기은퇴하고 싶은 마음이 다시금 치솟..... --;) 거기에 약속이라도 두어 개 생기면 잠이 부족해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해야 할 일을 못하는데서 오는 스트레스로 짜증도 슬슬 생겨난다. 분명 약속이라 함은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고 서로에게 즐겁자고 하는 일임에도 말이다. --;;

한동안은 코로나 위기로 집콕, 회사콕 시대라서 그런지 그다지 방해받지 않았고 스스로의 만족도도 높았는데, 이제 슬슬 사람들과의 만남이 잦아지고 또 반갑다고 맥주를 들이키는 일이 많아지니 자꾸 어기는 주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계속 약속을 미루기도 점점 미안해질 무렵, 사실대로 피아노 연습도 해야 해서 저녁약속은 가능하면 하나만 잡는다는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다들 이어지는 질문이 "피아노 연습을 왜 해요?"이다. 

그 해석은 우선,
다 큰 성인이 즐길 정도의 수준이면 됐지 더 배워 무엇하느냐는 실용주의적 관점이 있고, 
다음은 연주하려 그러느냐는 목표 지향주의적 관점이 있고,
다음은 인생을 뭐 그리 바쁘게 사느냐는 약간 힐난 섞인 관점도 있다. 

그런데 어떤 관점에서 묻든, 사실 나는 딱히 적당한 대답이 없다. 그저 "해결하고 싶은 부분이 생겼으니까",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아직 못해서", "곡을 예쁘게 만들고 싶어서" (또는 싫은 사람에게는 "당신 만나기 싫어서" --;;) 정도가 들이미는 대답이다. 

그런데 내가 말 못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냥, 재미있으니까"
(끝)
이걸 어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피아노 연습을 하는 이유는 그 시간이 즐거워서이다. 건반을 누르며 생성되는 음악에 스스로 도취되기도 하고, 그 행위 자체가 즐거워서이다. 다시 얘기하면 내가 책을 읽는 이유와 같고, 내가 수영하는 이유와 같다. 철저하게 취미의 영역에서 즐겁자고 하는 선택이다. 단지, 다른 사람들처럼 어떤 곡을 치고 싶어서라거나 언젠가 연주를 멋있게 하고 싶어서라거나 이런 목표가 없을 뿐이다. 이런 까닭에 나의 속도나 효율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고도 할 수는 있다. 한 곡을 서너달 잡고 있어도 나는 빨리 해치우고 싶은 마음이나, 조급하게 곡을 더 숙달시키려는 노력은 그다지 않으며, 언젠가 연습하다보면 악보도 자연스레 외워지고, 곡의 분위기도 나름 살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하는 정도랄까. 아마도 성인 취미 학습자는 이와 같은 마음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다만 피아노를 치지 않는 이들에게 이해시키기가 다소 곤란할 뿐이다. (해보지 않으면 모르므로.. 다른 많은 취미 영역이 사실 그렇지 아니한가?) 

누군가 노래방에 간다면 왜 가는지 묻지 않는 것처럼, 내가 연습실에 가는 데 대해 질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 피아노를 연주하는 즐거움 때문이다, 순전히. 

 

2020.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