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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Camino

주책맞은 눈물

날라리 빵꾸인생 2024. 8. 4. 01:25

: 그러니까, 그러니까, 살포시 안아주는 그녀가 따뜻해서, 고마워서 그런거라고 하자. 그러니 더없이 주책에 또 주책인 거라고 하자.

어제 레온에서 더 많이 걸어왔으니, 오늘 가야 할 길이 그다지 많지 않기도 했고, 알베르게 봉사자 할머니가 아침을 6시에 준비하니 꼭 먹고 가라고 손을 잡고 당부하기도 해서 6시에 맞춰 준비를 하고 식당에 갔다. 어머나, 대개의 형식적인 아침이 아니라 계란도 구워있고, 우유와 오렌지 쥬스는 물론 따뜻한 커피도 따라주신다. 빵도 데워주고, 꼴랑 3명인 순례자가 혹시 부족한 게 있는지 살펴보고 웃으면서 가져다 주셨다.
그런 배려 또한 고마운지라, 나는 밥을 먹으면서 파파고로 고맙다는 인사를 스페인어로 번역했다. 이따 나가면서 보여드려야지 했다. 순례자들이 다 먹고 떠나는 길을 할머니 봉사자는 문앞까지 가서 “부엔 까미노~” 인사를 하신다. 나도 일단은 서둘러 다 먹고, 계란 한 개는 주머니에 챙겨넣고 가방을 메며 할머니를 마주했다. 그리고 번역된 문구를 보여드릴까 하다가, 아니 무슨 마음이었는지 더듬더듬 읽기 시작했다.

“Descansé bien en instalaciones buenas y limpias. Muchas gracias. Sé feliz siempre.“
”좋고 깨끗한 시설에서 잘 쉬었습니다. 매우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


읽어보기라도 할걸, 갑작스레 읽는거라 진짜 더듬더듬 겨우 읽었는데, 듣는 그녀의 표정이 매우 행복하시다. 내가 다 읽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가 나를 향해 팔을 벌렸다. 뭐지? 기쁨의 표현인가 했는데, 표정으로 “안아드릴게요”였다. 그래서 나도 얼떨결에 안겼는데, 어머나 글쎄 눈물이 주루룩 흐르고, 헉, 호흡이 흔들린다.아, 주책바가지.
후다닥 떨어져나와 뒤돌아섰다. 눈물을 닦고 안 그런 척 가방 허리끈을 매고, 코를 풀었다. 아, 이게 울 일인가. 할머님은 그냥 바라보시다가, 내가 민망해 하는 걸 아셨는지 돌아서서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그러니 나는 더 서러워져서 화장실에 들어가야 했다.
감동스런 문구를 쓴 것도 아니고, 그저 잘 지내다 간다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두 손을 모으고 감동하는 할머니를 보니 더욱 고맙고 미안해서 그런가보다. 그리고 지금까지 묵었던 알베르게에서 그저 오가는 순례자의 한 사람으로, 어쩌면 나의 인간성과 개성이 배려되지 않는 상황과 힘든 일정 속에서 숨겨져 있던 서러움이 터져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고마움과 서러움인가.
다시 정비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밝게 “아디오스~”를 외치며 나왔고, 할머니는 여느 순례객에게 그랬던 것처럼 문앞까지 나와서 ”부엔 까미노~“ 인사를 해주신다. 길을 걷는 내내 울컥거리는 마음을 한참이나 참아야했다.
이 산티아고 가는 카미노길에 사람이 몰리는 것은 길뿐만은 아닌 듯하다. 그 안에 어울려 사는 스페인 사람들과 종교적인 힘이 있는게 아닌지. 그래서 벌써 천년 넘게 그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게 아닌지 싶다.

2024. 8. 3.
아, 봉사자 할머니의 사진을 못 찍어두었다. 그 따스한 미소를 기억해두고 싶은데 말이다. 언제고 내가 다시 스페인에 온다면 한 번 더 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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