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주문'이 필요하지 않은 '산책자'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해가 바뀌면 으레 최우선순위가 되는 것이 수첩을 바꾸는 일이다. 한 해 동안 내 파우치에 끼어 항상 동행해줄 나의 수첩이며, 일년이 지나면 온갖 약속과 스케줄은 물론 잡다한 생각과 잡다한 계산, 메모 등이 수두룩빽빽하게 들어차고 주구장창 들고다닌 탓에 손때묻은 쾌쾌한 냄새가 더 정겨워지는 수첩이다. 수첩을 정리하면 맨 첫장에는 항상 "산책자의 일상" 제목 아래, 문장들이 줄 지어 들어선다. 예를 들면, - 신나는 일은 얼마든지 있어.- 대책없이 명랑, 아이처럼 순진무구- 나의 즐거움은 누구도 방해할 수 없어.- 아낌없이, 후회없이, 하염없이 사랑하라.- 의심하지 말고 정열적으로 사랑하라.- 삶의 행위를 열망에 맞춰라.- 타인이..
: 그러니까, 강박하지 않기오늘은 도서관까지 걸어갔습니다, 문득 걷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문득 잡아든 책을 나오기 전까지 읽었습니다, 그 책에 집중하고 싶어서.연습실에서 더 이상 시계를 보지 않습니다, 손이 아프거나 싫증 나기 전까지는 피아노를 칩니다. 제주가 생각나면 비행기 표를 끊고.햇살이 좋으면 걷다가 벤치에 앉아 온몸 가득 햇살을 맞습니다. 랜덤으로 틀어놓은 음악 중 맘에 드는 소리가 들리면, 작정하고 그 가수의 곡을 죄다 훑어보고.문자로 안부를 묻는 그녀가 보고 싶어, 냅다 안성까지 쫓아가 얼굴을 마주합니다.조카랑 아이스크림 퍼먹다 내키면 세종 가는 기차표를 취소하고.나가려다 비가 오면 맘을 바꾸고, 주저앉아 따뜻한 차를 한 잔 끓이고. 어쩌다 그 녀석이 생각나도 이제는 그리워도 합니다. 나는 ..
: 늘 그렇지만, 세월 참, 여지없다. 지난 2023년의 keyword는 별 고민 없이 쓱쓱 써졌는데, 올 2024년의 keyword는 무엇일지 한참을 고민했다. 아무래도 20년 만에 학교로 돌아가는 데 대한 낯섦이랄까. 대학교 학부를 1994년에 시작했고, 대학원을 지금 2024년에 시작하니 딱 30년 주기다. 2024년 keyword ① 사유, 집중, 학습 ② 자유, 개방, 포용 ③ 계획, 관리, 점검 ④ 평온, 온화, 고요 잘 지켜보자. ----- 2023년 keyword ① 최선, 노력, 열심 ② 집중, 사색, 명상 ③ 근검, 간소, 절약 ④ 고독, 고요, 정화 (집중과 고요가 중복되는구나. 2023년은 아프기도 하고 생각이 사방팔방으로 뻗어서 정말 집중하지 못했던 듯하다.)
: 아무리 부끄럽더라도, 그건 나의 일부일 뿐, 나의 전체를 부정하지는 말자 단 하루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 몇 개월은 기대하고 설레었으니까. 그게 너무나도 명백하게 부끄러운 충동이었음을 깨닫게 되니 너무나 좌절스럽다. 그래서 또 하루이틀을 아무 것도 못하고 함몰되어 있다. 급기야 오늘은 회사도 제꼈다. 이건 위험하다. 내 전부를 부정하다니. 나는 그래도 괜찮은 부분도 있는 사람이다. 부끄러움도 나이지만, 또 당당하고 호탕하고 친절한 것도 나다. 그저, 그저, 그저 혼자임을 인정하고 기대지 않는 게 상처받지 않고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구나, 다시금 되뇌고 있다. 다시 혼자의 길로 나서야겠다. 함몰되지 않을테다.
1. 그 사람과 손잡고 바람 맞고 햇살 받으며 산책하기 2. 내가 만드는 피아노 선율 3. 코어로 몸 붙들며 우아한 발레, 춤추기 4. 물속을 자유롭게 유영 5. 경이로운 자연환경에 감동하기 6. 좋아하는 사람들 바로보며 함께 웃기 7. 엄마, 동생들과 맛있는 음식 먹기 그래서 가지고 싶은 것 1. 그 사람 2. 연습할 시간과 끄떡없는 체력 3. 비행기 티켓과 숙박권 4. ... 어쩌면 건강과 체력과 두둑한 잔고....겠구나. 2022. 6. 29.
: 나에게 일탈이란. 무책임, 무질서, 불성실, 예를 들어 무단결근, 일정표 없는 여행, 무작정 퇴사, 대책없는 소비, 후일 생각 않는 연애.... 그러고 또 무엇이 있을까. 2021년의 키워드를 찾으면서 이전에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탈'과 '반역'을 써놓고 보니, 그동안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한참을 들여다봐도 내게 무엇이 일탈이고 반역이 될지를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일탈이란 정해진 경로에서 벗어남이고 반역이란 따르던 것을 배반함이니, 우선은 내가 서 있는 경로와 따르는 무언가가 있어야 가능할텐데, 사실은 그것조차도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 본디의 목적이나 서있는 길,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라 하면 주어진 사회인으로서의 책임, 성실, 임무 완수와 내 욕망에 충실하는 것이라 할까..
: 不狂不及 일단, 마음이 답답해 가져왔습니다, 맥락 없음, 그저 미치고 싶을 뿐. 현실은 진실의 적이다! 세상이 미쳐 돌아갈 때 누구를 미치광이라 부를 수 있겠소? 꿈을 포기하고 이성적으로 사는 것이 미친 짓이겠죠. 쓰레기 더미에서 보물을 찾는 것이 미쳐 보이나요? 아뇨! 너무 똑바른 정신을 가진 것이 미친 짓이오! 그중에서도 가장 미친 짓은 이상을 외면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오. - 미겔 데 세르반테스, , 정재승, 에서 재인용
: 나를 벗하며 사는 사람 어찌된 영문인지 하루가 꽉 차 있다. 친구를 만나는 것도 아니고, 과로사하는 택배노동자처럼 일이 많은 것도 아니고, 가족도 없이 독거자인데도 하루의 일정이 시간 단위로 가득해 숨 돌릴 틈이 없다. 대부분은 내가 선택한 일이다. 허리 때문이라는 이유로 운동도 하고 있으며, 책이라도 안 읽으면 어버버 바보가 되어 책도 읽어야 하고, 퇴근 후 남는 대부분의 시간은 당연히 피아노 앞이어야 하고, 아직 은퇴를 못하였으니 하루 10시간은 꼬박 출퇴근과 업무에 할애되어 있다. 자투리 남는 시간을 모아 후다닥 도시락 반찬을 만들어야 하고, 셔틀에 실려 이동하거나 잠시 앉아 쉬는 점심시간에는 들어야 하는 음악도 있다. 아, 하루라는 시간에 이미 물이 한가득이라, 아차 까딱만 해도 모두 흘러넘칠..
: 메멘토모리 그러니까 메멘토모리를 알았던 건 한 십 년 전쯤, 이십년 전쯤(?) 이성복의 책 때문이었고, 읽을 당시에는 크게 영향을 받아 평생 기억할 것 같았던 책 제목은 지금 암만 네이버를 찾고 머릿속을 헤매어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래서 더욱, 아, 내가 육체의 쇠락,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구나 느껴보기도 하는데, 어젯밤만 해도 코로나 시대에 수영이고 뭐고, 움직이는 건 전혀 하지 않는 내 몸이 안녕하신가 질문하던 차에, 혹시 이대로 깨어나지 않는대도 괜찮다, 괜시리 죽음을 끌어다붙이며 메모장에 "나는 늘 죽음을 염두하고 있다"를 써 놓았다. "나는 늘 죽음을 염두하고 있다." 죽음을 일상에 끌어들이는 버릇은 한 십여 년이 된 듯하다. 매년 심한 동서부정맥으로 언제 심장이 멈출 지 모른다는 건강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