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병철, 김태환 옮김, 에로스의 종말, 문학과지성사 1. 에로스에 대한 오해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에로스'가 무엇인지를 정의해야 한다. 때로는 로고스와 대립되는 열정이나 감성이기도 하며, 때로는 인간 본연의 감정으로서의 사랑, 열망이기도 하며, 절대적인 결론이기도 하며, 인간을 추구하게 하고 긴장하게 만드는 인식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에로스의 본질적 성향은 부정성이고, 이격성이고 예측 불가능하고 "할 수 없는" 대상이라고 한다. 그러한 에로스가 왜 종말인가. 그것은 할 수 있음이 지배하는 성과사회, 모든 개체가 개별로 내몰리는 사회, 동일자들의 편안함과 안락함이 추구되는 사회, 그 안에서 다들 죽음을 무릅쓴 에로스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벌거벗은 삶..
: 파리의 객체를 구분할 수 있다면 반려 파리로 삼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는가 요 며칠 사무실에서, 그것도 특히 구석진 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자꾸 내 몸을 스치는 파리에게이름을 붙였다, 욘석! 그리고 일하느라 귀찮으니 딴 사람이랑 놀아라, 내쫓았다. 휴일 근무, 나 홀로인 사무실에 욘석이 또 찾아왔다. 아무도 없어 심심해서 찾아왔다고, 놀아달라고. 문득, 궁금해졌다, 네가 요 며칠 집적대던 그 녀석이냐,아니면 책상 위 방울토마토 냄새를 맡고 찾아온 그 녀석 친구인게냐.만약 너가 욘석이라면, 나 역시 반가울텐데, 2026. 6. 6.
: 사랑이 내게 미치는 영향 몇 날 며칠 쌓인 피로로 입가가 찢어지고, 꺼끌꺼끌 입안이 돋아나는데도 불구하고 또 나선다. 그가 무슨 자양강장제도 아닌데, 마주하면 피곤했던 몸에 총기가 바짝 오르고 뒤따라 달리는 걸음이 신나기만 하다. 행여 그림자라도 스칠라치면 심장이 콩닥거리고, 그의 선한 눈길에 마음이 두근거린다 이런 설렘은 다시 없을 줄 알았는데, 왜 다시 내 맘은 뛰는 것인지. 안 될 일인 줄 알기에 그저 혼자만 알고 혼자만 간직하며 나 홀로 삭일 참이다. 그저 적당한 거리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그의 그림자를 살며시 어루만지기 그것이 내가 그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2026. 6. 6. 오늘 저녁은 감자수제비 끓여야겠다. 송송송 감자를 썰고, 총총총 호박을 채썰어 푸짐하게 얹어 ..
: 신형철, 인생의 역사, (주)난다, 2022. 읽다가 자꾸 멈추어 서서 생각을 다듬는다. 자꾸 나를, 내 외로움과 사랑과 슬픔을 건든다. 그래서 이 책을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 중이다. 사는 건 오늘, 지금, 여기에 발 딛고 나날들을 채우는 것이며, 또한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들, 내가 존재해야 한다고 바라봐주는 것들을 살며시 어루만지는 것이라고. 그들의 시와 신형철의 이야기로 곱씹어보는 중이다. 아무래도 나는 사랑해야겠고, 타인을 용납해야겠다. -시를 통해 발견하게 되는 사랑의 면모: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탄행하는 나의 분인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
: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음산책, 2014. 9. 맨 첫 페이지의 글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표현되지 못한 진실은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정확하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정확하게 사랑(장승리의 시 '말' 중)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섬세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책머리에서 본인이 가장 섬세하게 (작품을) 사랑하고 싶다)고 한다. 이에 빗댄다면 정확하게 사랑 받을 때야말로 인간이 가장 충실하게 행복한 순간이지 않을까, 또는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가 가장 충족되는 순간이지 않을까 한다. 반면, 나로서는 '정확하게 사랑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하는 게 아닐까... 아직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는게, 책을 다 읽고서도 책 제목인 '정확한 사랑'에 생..
:김영민,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 사회평론, 2026. 1.두 김영민이 있다. 한 명은 정치외교학부 교수이시고, 한 명은 서울 근교에서 인문학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서양철학자이다. 후자 김영민의 동무론에 혹하여 김영민의 이름으로 책을 찾다가 교수 김영민을 알게 되었으나, 어쩐 일인지 교수 김영민의 책은 늘 달콤하게 읽은 기억이 별로 없다. 이 책도 매니페스토, 즉 선언문에 가까운 생각 외에는 그다지 재밌지 않았다. 저자가 바라보는 논어 에세이이고, 치열하게 고민했다기보다는 고대의 논어를 현대의 관점과 상황에 맞추어 연결시키려는 노력 정도로 보였다. 다만, 기만적이지 않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하고, 무엇을 미워하는지 정확히 짚을 것"을, 메타적 관점을 익힐 것을 다짐해본다. 이전에 장석주의 ..
: 홍선기, 최소 불행 사회, 모티, 2026. 1. 20.사회가, 시스템이, 적어도 구성원의 불행은 최소한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해법을 풀어낸 책. 여러 다양한 구성원과 집단, 욕구와 이익들이 얼키고 설켜 너무도 역동적으로 굴러가는 사회에서 꼭 짚고 있는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더 나아질 거라는 확신은 없지만, 구성원의 행복을 키우거나 보장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불행은 최소한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는 바이며, 한국보다 먼저 시작된 일본의 변화하는 사회상을 끄집어 한국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흥미로웠다. 그리고 무엇이 공정이고,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목차프롤로그: 최소 불행도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제1부 일본이라는 거..
: 이렇게나 기초인데, 이렇게나 불안정하다니..왼손의 셋잇단 도미솔을 차분하게, 안정되게 치는 일일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너무도 단순하고, 간단하고, 반복적인 일에 자꾸 무너진다. 왼손의 셋잇단 도미솔을 지키면서 오른손으로 도, 미, 솔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왜 이리 잘 안 되는지, 손가락이 무너지고 머리가 무너지고 마음이 무너지고 말았다. 악보도, 손가락의 패턴도 고민할 것이 없어 그저 눌러주기만 하면 되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소리가 커지고, 리듬이 불안정하고, 급기야 아무 것도 누르지 않는 2번 손가락에 잔뜩 힘이 들어가 손이 묵직해지고 만다. 기초의 중요성과 다시 한 번 연습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주구장창 하루종일 왼손의 셋잇단 소리만 만들다 나오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은 딴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