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벽 첫차로 출근하는 길, 이미 낯익은 버스기사님과 아침 인사를 나누고, 어쩐 일인지 오르지 않는 고정 승객의 안부를 걱정하고, 연구단지 정류장에서 우르르 내리는 승객들에게 마음속 화이팅을 외쳐주고,오늘 처음 보는 연인의 이야기를 엿들으며,첫차가 지나는 푸른 새벽을 음미했다. 이제 곧 봄이 오면 이 창백한 첫차의 새벽도 불그스름해지겠지.2. 일기를 쓰는데 괜시리 설레고 들떠서, 여느 날과 매한가지인데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어제의 합창 때문이다. 조화롭기 위해 나를 낮추고 조정하는 일, 소리를 다듬고 연결해서 감정의 포물선을 그려내는 일,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무래도 나는 즐거웠나 보다. 은미 언니에게 행복을 나누어 고맙다며 문자를 보냈다. 3...
: 속도는 욕심 낼 일이 아니다, 그저 도를 닦아야 깨닫게 되는 어떤 '이치' 또는 어떤 '선물' 같은 것이다. 반성해본다, 그동안 나는 피아노를 친다고 뻐기거나 자만하는 마음은 없었던 걸까 또는 누군가에게 우쭐할 마음으로 피아노를 치고, 블로그를 쓰는 건 아니었을까 그런 마음이 있어 아직 소리도 갖추지 못하고, 짚는 방법도 불안정한데 속도를 내려고 안달한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점점 소리는 비어가고, 손가락은 날아다니고, 스타카토 하나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데 악보의 페이지 수만 채우는 것으로 위안을 삼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보니속도에 안달하게 되고, 결국 소리는 더더욱 비어가고, 손가락에는 더더욱 힘이 들어가고, 마음은 자꾸만 다치고 만다.속도야말로 진정 마음을 비워야 하는 대상이다. 벽을..
: 소리에도 성격이 있다, 그런데 그 성격이 나를 닮았다, 클났다.내가 마음을 부여잡고 손가락을 노려보며 입을 앙당물고 내려치면 소리가 단단하고 정갈해진다. 악보 보느라 정신이 팔리어 손가락에 힘이라도 들어가고, 팔꿈치나 손 아치가 무너지면 소리가 뭉특하거나 바위 부딪는 소리가 된다. 매번 틀리는 구간을 마주하고 마음이 긴장하게 되면 여지없이 소리도 긴장하고 급기야는 멈춰 서고 만다. 내가 원하는 소리가 있다면 그렇게 만들기 위해 나의 자세부터 다듬어야 할테다 무작정 손을 얹지 말고, 일단은 어떤 소리를 만들고 싶은지, 어떤 곡을 만들지 생각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나서 시작해야 할테다. 그렇지 않으면 소리는 자꾸 내 맘을 닮아 헐렁이거나 투덜대거나 버벅댈테니까. 또한,그게 피아노 소리뿐일까, ..
: 데이비드 맥윌리엄스, 황금진 옮김, 머니: 인류의 역사, 포텐업, 2025. 항상 돈이 문제다.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 뒤흔드는 것은 사랑도 아니고, 신념도 아닌 결국은 돈이다. 인류사, 세계사 그리고 문화사, 심지어 종교사 역시 돈이 좌지우지하며, 수많은 인류가 돈 때문에 생사를 달리했다. 이러한 평범한 인식 외에 이 책은 내가 아는 세계사의 맥락과 세계 패권의 이동을 돈의 관점에서 다시 그려주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스친다, 지금 인류의 문화는 돈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며, 세계사를 진화발전이라 정의한다면 그 역시 돈 때문에 가속화된 것이라는 점이다. 할일이 많은 중에 분량도 많았지만 틈틈이 읽었고, 결국 이 책을 마저 읽으려고 회사에 나왔다. 돈이나 인물과 관련한 소소한 에피소드 읽는 재미도 ..
: 심지어 하농. 레슨을 받다보면 절망감이 드는 게 한두 순간이 아니며, 좌절의 연속이 하루이틀이 아니지만은 하농에서 소리가 빠진다는 소리는 참, 그동안의 나의 연습을 몽땅 허무하게 만들곤 한다. 그저 단순하게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연이어 치는 과정에서 소리가 빠진다는 건 아직 음악을 연주할 때가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만 같다. 게다가 이러한 문제 상황은 내가 악보를 외워서 치는 과정에서도 속속 드러나곤 한다. 이미 악보를 외운 까닭에 소리만 집중하면 되는 상황인데도 소리가 빠진다는 건 나의 손가락과 주의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또 어쩌면 우리 선생님은 후루룩 넘어가는 구간에서도 빠지는 소리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살며시 웃으며 소리 빠지는 지점을 꼭 지적하고 넘어가신다. 내..
: 모짜르트의 몇 없는 단조 곡, 손가락 둔하지만 도전! 다음 곡을 잡았는데 다시 모짜르트다. 게다가 베토벤에 이어 모짜르트의 묘미를 새삼 느끼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어느 작곡가를 이해하려면 그 곡을 쳐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듣는 베토벤과 치는 베토벤이 달랐고, 역시 듣는 모짜르트와 치는 모짜르트가 다름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주제부의 선율이 맘에 들어서 시작했고, 선생님께 악보를 들고갔을 때에도 그닥 난처한 기색(!)을 보이지 않아서 잡고 있는데, 곡을 붙잡은 지 3개월 즈음이 된 요즘에도 꾸밈음은 제대로 소리를 못 내고 있고, 스타카토의 분위기가 아직도 일관되지 않으며, 무엇보다 곡의 흐름이 정갈하지 않고 들쑥날쑥이다. 게다가 이제 겨우 곡의 중간쯤까지의 악보를 읽었고, 손가락 번호를 자꾸 바꾸는..
: 문형배, 호의에 대하여: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가, 김영사, 2025.를 본 건 아마도 작년 스페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였다. 파리까지 가는 10시간 동안 자고도자고도 한참이나 남은 시간에 스크린을 뒤적뒤적하다가 절뚝이며 걷는 어르신의 뒷모습이 포스터의 전부인 를 보고 '이건 뭐지?' 하며 생각없이 보다가 한동안 산티아고 길을 걷는 내내 되새겨 보던 김장하 선생님의 삶. 아마도 문형배 법관 역시 그 다큐에서 처음 보는 것이었을테다. 그러다가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와 선고가 있기까지 온갖 주요 미디어에서 문형배 대법관님의 면면을 보게 되었고, 가녀린 듯하면서도 뚝심있는 선고와 주문이 매우 깊게 와닿았었다. 그저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기를 자처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기준과 ..
: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독일인의 사랑, 배명자 역, 더클래식, 2020. "일상생활의 사소한 사건에서도 신의 뜻을 생각하고 인생에서 겪는 모든 고통을 신의 섭리라 여기는 것이 힘들다면, 삶을 의무로 받아들이지 말고 예술로 받아들여라. (p.100)이를 사랑으로 치환해서 읽었다. 사랑이 고통스럽다면, 사랑을 예술로 받아들여라. 그리고 인생으로 치환하는 것도 가능하다. 사는 것이 고통스럽다면, 인생을 예술로 받아들여라. 아, 그리하면 모든 것이 이해되리라, 예술은(사랑은, 인생은) 고통 속에서 찬연하게 빛난다는 것을... 목차 첫 번째 회상 두 번째 회상 세 번째 회상 네 번째 회상 다섯 번째 회상 여섯 번째 회상 일곱 번째 회상 마지막 회상 2025. 10. 4.
: 샌딜 멀레이너선, 엘다 샤퍼, 결핍의 경제학, 이경식 역, 알에이치코리아, 2014. 아무래도 행동경제학 분석서이고, 이 책에 따른 어쨌든 나의 결핍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결론을 내리자면, 바쁠수록 시간이 없을수록 잠시 물러서서 상황을 돌아보는 여유와 판단이 필요하며, 나의 결핍을 시시때때로 알려주는 장치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가난'과 '빈곤'한 자들에게 이런 행동경제학적 분석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읽으면서도 미지수였으나, 결론과 본문 중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들을 대상으로 한 정책에는 충분히 반영될 여지가 있겠다. 가난한 자들의 천성이나 습성이 아니라, 그저 결핍 상황에 따른 터널링과 대역폭 없음을 이해하고 그를 보완하는 장치를 고안할 필요성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 화성발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