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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의 종말

날라리 빵꾸인생 2026. 6. 11. 15:02

: 한병철, 김태환 옮김, 에로스의 종말, 문학과지성사


1. 에로스에 대한 오해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에로스'가 무엇인지를 정의해야 한다. 때로는 로고스와 대립되는 열정이나 감성이기도 하며, 때로는 인간 본연의 감정으로서의 사랑, 열망이기도 하며, 절대적인 결론이기도 하며, 인간을 추구하게 하고 긴장하게 만드는 인식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에로스의 본질적 성향은 부정성이고, 이격성이고 예측 불가능하고 "할 수 없는" 대상이라고 한다. 
그러한 에로스가 왜 종말인가. 그것은 할 수 있음이 지배하는 성과사회, 모든 개체가 개별로 내몰리는 사회, 동일자들의 편안함과 안락함이 추구되는 사회, 그 안에서 다들 죽음을 무릅쓴 에로스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벌거벗은 삶에 매달려 노동하는 노예는 에로틱한 경험을 하지도 못하고 에로틱한 갈망을 품을 줄도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에로스를 전적으로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지금까지의 나는 나르시즘적 성과주체에 머물렀음을 인정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사랑함으로써 타인에서 소생하는 경험을 하고 싶다. 그것이 남은 내 생에 대한 예의이리라. 그리고 이해하자, 불완전성이, 부정성이, 예측 불가능성이 긴장을 형성하고 에로티시즘을 만들어내는 것임을. 

"사랑의 진정한 본질"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을 포기하고, 다른 자아 속에서 스스로를 잊어버린다는 점"에 있다. - p.57

 2. 삶을 긴장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부정성, 이격성, 거리이며, 가질 수 없는 타자이다. 부정성의 긴장감, 거리의 파괴는 타자를 가까이 가져오기는커명 오히려 타자의 실종으로 귀결된다. 

3. 사랑은 하나의 가능성이 아니다. 사랑은 우리의 주도권에 따라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밑도 끝도 없이 우리를 급습하고,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러나 할 수 있음이 지배하는 성과사회, 모든 것이 가능한 사회, 주도권과 프로젝트가 전부인 사회는 상처와 고뇌로서의 사랑에 접근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책은 지금의 사회에서는 에로스가 사라졌다고 외치는 중이다. 

 


목차
서문 사랑의 재발명_알랭 바디우
1장 멜랑콜리아 
2장 할 수 있을 수 없음
3장 벌거벗은 삶
4장 포르노
5장 환상
6장 에로스의 정치
7장 이론의 종말 

 

2026. 6. 11.

읽다가, 예전에 읽었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왜 그 맥락이 기억나지 않았을까. 책은 절대적으로 성찰과 음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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