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을 잘 추스리고, 다시 여정을 가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심드렁 걷는 중이었는데, 느닷없이 여성 한 분이 나를 붙잡고 거울을 들고 있어달라 하셨다. 엉겁결에 거울을 들고 왜 그러시나 하고 보는데, 내 쪽에서는 안 보이던 반대쪽 얼굴을 거울에 들이대는데 피가 주루룩 흐르고 땅에 미끄러지셨는지 얼굴에 생채기가 가득하다. 게다가 이마 쪽에는 혹이라 하기에는 엄청나게 큰 혹이 생겼고, 찢어졌는지 피가 계속 흐르고 있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이냐며, 그제서야 나 역시 바짝 긴장해서 살펴보는데, 그때서야 할머니인 걸 알아챘고, 가방이며 옷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고, 거울을 든 내 손에도 피가 묻었다. 할머니는 밴드를 들고 해결해 보려 하시는데, 밴드로는 택도 없는 일이다. 일단 길가에 앉히고 할머니의 ..
: 오늘은 무척이나 걷기 싫었다. - 새벽에도 기운이 별로 없다. 어제 저녁도 잘 먹었는데, 요즘 잠을 못자서 그런지 기운이 없다. - 그래서 걷는 것도 신이 나지 않는다. - 느닷없이 사고를 당한 할머니를 도와드리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심드렁하던 마음이 바짝 긴장되었다. 아, 사고는 순식간이다. 할머니의 당황스러움이 너무도 이해되고 안쓰럽다. - 구름도 많고 가끔 비도 흩날려 걷기에는 좋으나, 어째 걷고 싶지가 않았다고 해야 할까. - 세바스찬이랑 한참 얘기하며 걸었다. 늘 빨리 걷던 세바스찬이 어쩐 일로 오늘은 나와 보조를 맞추어 걷는다. 영어를 더 잘하고 싶단다. 지금도 충분하지만,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해주었다. - 거리도 짧아 일찍 끝났는데, 알베르게는 1시에 문을 열어서 카페에 죽치고 앉..
: 내 작품의 제목은 뭘로 한다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중에 이 있다. 한 그림 안에 낮과 밤이 공존하는 오묘함과 동시에 가로등과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오묘하게 따뜻한 느낌을 주는 그림이다. 한참을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마음의 여러 감정이 차분해지는 그런 그림이었다, 내게는. 어쩌다가 새벽에 길을 걷다가 사진을 찍었는데, 그런 느낌이어서 자못 뿌듯해 하는 중이다. 하늘의 푸른 빛은 없지만, 새까만 주변에서 온전히 가로등 불빛에 의존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집과 나무 한 그루. 카미노의 새벽길을 생각할 때면 밤하늘의 별들과 달빛과 그리고 이 집이 떠오르지 싶다. 2024. 8. 11. ——르네마그리트, 빛의 제국
: 맛있는 저녁식사 - 오늘 역대급으로 더운 날, 게다가 31킬로 ㅠㅠ 정말 힘들게 걸었다. 숙소도 늦게 도착해서 모든 게 늦어져 일기도 못 썼다. 게다가 사리야 숙소에 비누를 놓고 왔다. 이런, 자꾸 하나씩 놓고 온다, 정신 차리잣!! - 길에 사람도 많고, 덥고 힘드니 음악도 시끄럽다, 잠시 듣다가 끄고 고요하게 걸었다. - 포르토마린, 예쁘고 세련된 호수 도시. 머물렀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츄로스와 초코라떼를 맛있게 먹었다. 그러고는 돈을 안 내고 나오는 만행을 저질… 진짜 깜짝 놀랐다, 정신 차리자. - 스페인 꼬맹이에 토마토 나눔 - 한국 아저씨랑 같이 걸었더니 힘든 줄 모르고 도착. 아저씨 알베르게를 같이 찾아주고 아쿠아를 한 잔 얻어 마셨다. - 띤또 데 베라노를 알게 되다 - 곤자..
: 아니, 벌써???? - 갈림길이다, 나는 수도원이 탐나서 긴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길 역시 오래된 느낌이 마구 든다. 벽이며, 나무며 돌 들에 오랜 시간이 쌓인 느낌이랄까. 좋았다. - 같은 길을 걸었는데 느낌은 달랐나 보다. 안개 낀 신비한 길의 느낌이 좋아서 나는 걸음을 늦추고 만끽하며 걸었는데, 대만 친구는 무서워서 달리다시피 걸었단다. 이렇게나 다르다. - 수도원 탐방, 내가 기대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 무섭거나 딴 생각이 들 때는 음악을 듣자. - 아, 속옷을 전 숙소에 놓고 왔다, 이런. 다행히 큰 도시여서 황급히 하나 사왔다, 휴우.. 난감할 뻔. - 늦게 들어와서 샤워도, 빨래도 다 늦었다. 그랬더니 다 안 말랐다. 우띠. 내일 가방에 걸고 다녀야할라나. 드디어 나도 해본다, ..
: 신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나 봄. 알베르게에서 만난 한국 아저씨가 라면을 권했다. 아, 한국에서부터 가져와 내내 짊어지고 다녔을 라면을, 그 배낭의 무게와 힘듦을 짐작하면서도 나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한동안 라면이 있다는 마을마다 상점을 돌아다니며 “Korean noodle!”을 외치고 다녔으나, 내 눈에는 한 개도 안 보였고, 나는 그저 일본 컵라면으로 만족했어야 했다. 그런데 라면이라니, 나도 모르게 눈이 번쩍 뜨였다. 아마도 아저씨는 나의 그런 모습 때문에, 이미 저녁을 드시고 오셨으면서도 굳이 라면을 끓여 먹자 권하시는가보다. 라면이라니, 라면~ 라면~ 신나게 끓여 후~후~ 불어먹어야지. 한 가닥도 놓치지 않고,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라면~ 라면~ 라면을 먹는고나~ 202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