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니까, 그러니까, 살포시 안아주는 그녀가 따뜻해서, 고마워서 그런거라고 하자. 그러니 더없이 주책에 또 주책인 거라고 하자. 어제 레온에서 더 많이 걸어왔으니, 오늘 가야 할 길이 그다지 많지 않기도 했고, 알베르게 봉사자 할머니가 아침을 6시에 준비하니 꼭 먹고 가라고 손을 잡고 당부하기도 해서 6시에 맞춰 준비를 하고 식당에 갔다. 어머나, 대개의 형식적인 아침이 아니라 계란도 구워있고, 우유와 오렌지 쥬스는 물론 따뜻한 커피도 따라주신다. 빵도 데워주고, 꼴랑 3명인 순례자가 혹시 부족한 게 있는지 살펴보고 웃으면서 가져다 주셨다. 그런 배려 또한 고마운지라, 나는 밥을 먹으면서 파파고로 고맙다는 인사를 스페인어로 번역했다. 이따 나가면서 보여드려야지 했다. 순례자들이 다 먹고 떠나는 길을 ..
: 오늘은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는 중, 거리도 33킬로를 넘어선다. 아, 강수미는 후회할 만한 선택만 한다. 빌어먹을. ㅠㅠ - 또 만날 수 있을까, 이 다정하고 따뜻한 알베르게와 자원봉사자들을.. 한참을 되새기면서 울컥울컥 하며 걸었다. 나도 참 주택이다. - 레온은 참 좋은데, 레온 앞뒤 구간은 고속도로 옆을 걸어야 해서 좀 싫다. 쌩쌩 달리는 차가 바로 옆이다. - 두 갈래로 나뉘는 길 중에서 고속도로 옆이 아니라 좀 돌아가더라도 시골길로 가자고 했더랬는데, 표시를 잘못 찾아서 도로 옆길을 주구장창 걸었다, 우띠. - 꺄악, 프랑스 할머니를 만났다. 내 얼굴에 가득한 미소를 보셨는지 할머니도 기다려주시며 아는 척을 한다. 영어를 못하셔서 소통은 안 되었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아시는가 보다. 가방 메..
: 당신과 함께 걸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군가는 드물게 제가 보내는 카미노 사진을 보고 “밭뷰”라고 하던데, 저는 정말 주구장창 시골만 걷고 있습니다. 그나마 4일에 한 번은 그 지역의소도시에 머물게 되지만, 소도시라 해도 마켓과 은행, 약국이 있고 좀 더 크게는 버스나 기차가 머무는 곳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드디어 레온에 가는 날입니다. 9일 전쯤 부르고스에 이어 산티아고 길에 있는 두 번째 큰 도시입니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대개 여기에서 하루를 더 머물면서 대성당도 보고 또 기타 도시 문물을 누리기도 합니다. 저도 왠지 마음이 들떠서 오늘은 ”산티아고에 간다“가 아니라 ”레온에 간다“는 모드였습니다. 드디어 레온이닷! 하지만 저는 레온에서 하루를 머물거나 심지어 여기에 ..
: 도시다 도시~ - 오늘은 어째서 산티아고 가는 길이 아니라 레온 가는 길처럼 느껴졌다. 아, 도시다, 도시. 그래서 만시야 알베르게의 안 좋은 기억도 금방 잊어버렸다. - 11시면 가게 문을 닫는다는데, 나는 그 전에 갈 수 있을까, 먹고 싶다는 강렬한 유혹에 다리 아픈 것도 잊고 열심히 전진, 드디어 먹었다. 야호 맛있다. 그래서 더 사들고 초코에 찍어먹었다, 아, 이래서 먹는거구나. 나는 지금까지 진짜 맛없는 것만 먹었나보다. - 유심도 성공, 은행 인출도 성공. 자, 이제는 관광이다. - 가우디 건물도 보고,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도 보고, 영어로 대성당의 역사와 양식적 기법과 리노베이션에 대한 설명을 듣자니 머리가 지끈지끈, 나중에는 그냥 흘려들었다. - 판테온인 줄 알았는데, 역사적 성당이었다..
: 카미노에서 부족한 것, 과일과 샐러드 알베르게에 도미토리와 샤워실을 제외하고 있을 만한 곳이 식당밖에 없다. 식당이래봐야 전자레인지, 커피포트, 식기류와 냉장고가 전부인 다이닝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테이블에 하나둘 모여 있다. 그런데 한 미국 아저씨가 봉지 가득 체리며 포도, 딸기 등을 담고 한 손에는 메론을 들고 나타나서 물어본다. “과일 좀 드실래요?” 뭐 누구에게랄 것 없이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에게도, 부엌에 드나드는 사람에게도, 밖에 서성이는 사람에게도 다가가서 물어본다, 과일 좀 드실래요? 과일장수도 아니고 뭐 그렇게까지 하는가 싶었는데, 보니 많기도 많다. 그래서 나는 좋다며 메론과 딸기를 받아들었고, 주변인들도 한 접시씩 받아들고 나눠먹었다. 테이블이 과일로 가득이다. “요거트도 있는..
: 길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못 가 본 길. 칼자디야 데 로스 에르마니오스에서 만시야까지 오는 길, 그러니까 사람들이 거의 택하지 않는 길을 걸으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욕하면서 걸었다. 진짜 너무 힘들어서 내가 왜 이렇게나 힘든 짓을 하고 있는지 속창자라도 답해 준다면 진심으로 꺼내들고 묻고 싶었다. 오늘 새벽부터 만시야에 도착하는 그 7시간동안 마주한 거라곤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 두 명, 도로에 치어 죽어 있는 여우 한 마리, 놀라 뛰어가서 나를 바라보는 토끼 두 마리, 그리고 사람이 다가가는데도 놀라지 않는 여러 무리떼의 새들이었다. 이 길은 로마시대 때 로마인들의 방식으로 지어져서 지금까지 유지되는 길이라고 하고, 23킬로미터 동안 그늘 한 점 없고, 마을 하나 없어서 꽤나 터프하고, 심지어 진..
: 걷는 7시간 내내 마주친 것 - 사람 2, 여우 1, 토끼 2, 그리고 무지 많은 새들….. - 5시 반에 나와서 걷다가 암흑이 무서워서 마을로 되돌아갔다. 6시 넘어서 조금 밝아오자 다시 걷기 시작했다. 무서웠다, 암흑과 그 속에서의 정체 모를 소리들이... 숙소에 같이 묵었던 필립에게 같이 가자고 청할까 하다가 그러면 가는 내내 대화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냥 혼자 나왔다. - 이 길을 걷는 사람은 오늘 나와 필립 둘뿐이다. 어제 숙소에서 묵었던 사람만이 걸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암흑에 묻힌 길이, 소리가,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주눅들게 했다. - 와, 로마시대의 길을 진짜 23킬로, 7시간 내내 체험했다. 진짜 힘들었다. 돌과 자갈에 치어 발도 몸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
: 숙소에 순례자는 딱 두명 - 어제 숙소에는 바닥에 매트리스만 깔아야 할 정도로 순례객이 몰렸는데, 오늘 숙소는 나랑 영국 아저씨 딱 두 명이다. 당연히 오는 길 내내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다. 순례객들이 잘 가지 않는다더니, 정말 온전히 나 혼자였다. - 한국인 부부 순례객과 나서는 시각이 같아서 한동안 같이 걸었는데, 와우~ 정말 빨리 걸으셔서 애초에 그냥 보내고 혼자 걸었다. 밤하늘에 별이 쏟아졌다. 은하수도 보였다. - 사하군에 도착해서 또띠야와 커피를 마시자니 마리아가 지나간다. 같이 베르시아노스에서 장을 보자고 했다. - 걸어오는 중에 베르시아노스 가는 길과 칼자디아 데 로스 헤로마니요스로 가는 갈림길이 보였다. 분명 어제 베르시아노스로 결정했는데, 앞서 가는 스페인 커플이 헤르마니요스 길로..
: 카미노의 길은 대부분 서쪽으로 향한다. 그래서 어느 날이든 뜨는 해를 등 지고 걷게 되며, 새벽에 출발해 일출이라도 볼라치면 잠깐 멈춰서서 뒤를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해를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 늘상 걸을 때면 해를 마주하는 해바라기의 노란 얼굴을 정통으로 바라보며 걷게 된다. 그런데 오늘은 스페인 아저씨의 조언대로 밭 사이로 난 길을 걸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자주 마주쳤던 아저씨 부부, 내가 신경이 쓰였던지 지나가는 나를 불러세우고 맨발로 쫓아와 알려준 길이었다. 아저씨가 보여준 책자를 보니 거리도 짧아보이고, 도로 옆길보다는 나아 보여서 고맙다며 경로를 바꾼 참이다. 밭 사이 길, 우리나라의 임도와 다를 바 없는 길인데, 길에 그늘도 없고 꽃들도 없어 다소 지루할 참이었다. 그런데 문득 바라본..
: 이곳이 생장에서부터 신타아고까지의 딱 중간이다. 다행히 나는 무사하다. - 5분의 차이로 앞서 나간 대만 아주머니들은 비를 쫄딱 맞고, 망설이다 늦게 나온 나는 멀쩡했다. 부지런한 그녀들이 비를 맞았다. - 어제 놀지 말고 까리온을 더 살펴볼 걸 그랬다, 아침에 걸어나오는데 웅장한 빌라와 너무 예쁜 이그레시아스가 있어서 매우 아쉬웠다. - 새벽길, 어쩌다 미국인 그 연인들과 같이 걸었다. 서로 말없이 배려하는 우리, 매우 따뜻했고 좋았다. - 오늘은 마을 하나 없이 주구장창 걷는 길이 17킬로미터로 카미노 구간 중에서 가장 길다. 물도 없고, 그늘도 없고 와우~ 다들 긴장한 모양이다. 9킬로 지점에 트럭매점이 있었는데, 너무 이른 시각이라 문을 안 열어서 시멘트로 만들어진 쉼터에서 복숭아를 먹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