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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Camino

과일 좀 드실래요?

날라리 빵꾸인생 2024. 8. 3. 00:15

: 카미노에서 부족한 것, 과일과 샐러드

알베르게에 도미토리와 샤워실을 제외하고 있을 만한 곳이 식당밖에 없다. 식당이래봐야 전자레인지, 커피포트, 식기류와 냉장고가 전부인 다이닝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테이블에 하나둘 모여 있다. 그런데 한 미국 아저씨가 봉지 가득 체리며 포도, 딸기 등을 담고 한 손에는 메론을 들고 나타나서 물어본다.
“과일 좀 드실래요?”
뭐 누구에게랄 것 없이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에게도, 부엌에 드나드는 사람에게도, 밖에 서성이는 사람에게도 다가가서 물어본다, 과일 좀 드실래요? 과일장수도 아니고 뭐 그렇게까지 하는가 싶었는데, 보니 많기도 많다. 그래서 나는 좋다며 메론과 딸기를 받아들었고, 주변인들도 한 접시씩 받아들고 나눠먹었다. 테이블이 과일로 가득이다.
“요거트도 있는데 먹을래?“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기만 한다.

본인이 다 먹지도 못할 과일을 뭐 이리 많이 샀는가 싶어서 이게 본인의 저녁인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오 노우~“ 절대 그렇지 않다면서 덧붙인다.
“매일 또띠야, 빵, 또띠야, 빵.. 과일이 좀 먹고 싶었어.”
모두가 빵긋 터졌다. 맞다, 지금 우리 모두의 식사가 대부분 또띠야와 빵의 연속이며, 또 거기서 나아가봤자 또다른 빵이나 타파스 정도이다. 식당에 가도 디너나 정찬이 아니면 샐러드 보기가 참 어려운 곳이고, 우리가 매일매일 보따리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다 보니 먹고싶은 걸 사다가 냉장고에 쟁여둘 수도 없어서 자꾸 빵이나 인스턴트 음식, 때로는 비스킷만 사서 먹고 있는 게 우리의 형편이다.  
그러고보니 순례길에는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 사람들은 또 각자의 방식으로 매 끼니를 해결한다. 그런데 스페인 사람이 아닌 이상 이 지역의 음식을 마음껏 누리지도 못한다. 게다가 매일 이동해야 하는지라 무게에 예민한 우리로서는 한 끼니 이상의 음식재료를 구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나마 바게트나 비스킷이 가지고 다닐 만한 선택지이다.  
새벽에 걷기 시작해 8시쯤 마을에 도착할때면 일단은 열린 바(Bar)를 찾아야 하고, 그곳에서 파는 음식을 먹게 되는데 그게 대부분 또띠야 또는 빵이다. 점심 역시 지나치는 마을에서 해결하거나 1시나 2시쯤 숙소에 도착해 정리하고 그 근처 바에서 해결하거나 하는데, 우리가 지나는 길이 시골이다보니 식당 찾기도 매번 어렵다. 심지어 2시에서 5시는 식당이나 마트나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 시에스타이다. 빵이든 뭐든 사놓지 않으면 5시까지는 쫄쫄 굶어야 한다. 그러자니 또 바에서 빵이나 또띠야로 해결한다. ㅠㅠ 게다가 스페인의 저녁시간은 대부분 7시에서 8시이다. 그전에는 식당이 아예 문을 열지 않는다. 담날 새벽 6시면 나서야 하는 순례자들로서는 참 적응하기 힘든 저녁식사시간이다.
그나마 스페인 순례자들은 이미 생활이 되어버린 시간이므로 제일 잘 적응하는 편이다. 저녁은 물론 와인이나 맥주 등으로 늦게까지 먹고 숙소에 들어오며, 바에서도 우리가 주문하는 것과는 다른 음식들을 먹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가스파쵸 같은 수프랄까.
나의 경우 고기를 먹지 않는 베지테리안이고, 또 음식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니 건너뛰기 일쑤다. 그나마 마트에 가면 꼭 잊지 않고 사는 게 토마토와 납작복숭아, 물, 바게트이다. 요즘은 맛있는 바게트를 찾아 직접 빵집을 찾아다니고 있으며, 또 생치즈를 얹어먹는 재미까지 알게 되어서 맛있게 먹고 있지만, 처음에는 참 먹을 게 없어서 선택했던 눈물 겨운 빵이었다. 다만, 이제 20일이 지나가는 차이니 나의 기본 체력도 다해가는지 자꾸 배가 고프고, 자꾸 허기가 진다.
엄마가 자꾸 잘 먹으라고 채근이신데, 멀리서도 내 식단이 보이시는가보다. 나도 산티아고까지 무사히 도착하려면 잘 먹어야겠다 싶은 마음이다. 내일은 슈퍼보다 식당을 찾아나서야겠다. 인스턴트 파스타 말고 진짜 파스타와 샐러드를 먹으러 가야겠다.


2024.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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