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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주문'이 필요하지 않은 '산책자'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해가 바뀌면 으레 최우선순위가 되는 것이 수첩을 바꾸는 일이다. 한 해 동안 내 파우치에 끼어 항상 동행해줄 나의 수첩이며, 일년이 지나면 온갖 약속과 스케줄은 물론 잡다한 생각과 잡다한 계산, 메모 등이 수두룩빽빽하게 들어차고 주구장창 들고다닌 탓에 손때묻은 쾌쾌한 냄새가 더 정겨워지는 수첩이다.
수첩을 정리하면 맨 첫장에는 항상 "산책자의 일상" 제목 아래, 문장들이 줄 지어 들어선다.
예를 들면,
- 신나는 일은 얼마든지 있어.
- 대책없이 명랑, 아이처럼 순진무구
- 나의 즐거움은 누구도 방해할 수 없어.
- 아낌없이, 후회없이, 하염없이 사랑하라.
- 의심하지 말고 정열적으로 사랑하라.
- 삶의 행위를 열망에 맞춰라.
- 타인이 아닌 오롯한 네가 되어라.
- 삶이 우리가 하고픈 것들을 하도록 과연 놔둘까.
책을 읽다가, 영화를 보다가, 또는 길을 걷다가 나를 툭 치고 지나가는 문장들을 붙잡아 놓은 것이고 이들은 어느새 내게 주문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힘들고 지칠 때, 화가 날때, 분노할 때 하나하나를 읊어보며 나의 마음을 다독이고는 했다.
올해 수첩에도 이들을 옮겨 적으려고 했다. 그런데 왜 멈칫하게 되는 걸까. 문득 이 문장들이 지금의 나에게는 필요하지 않는 걸까, 되묻게 된다. 아무래도 지금의 나는 (비록 지금 당장은 회사에 끌려와 하루 13시간의 보고서들을 읽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잠시이므로) 행복한 모양이다. 나를 다독여야 할 주문이나 기도가 필요하지 않는 그런 삶, 그게 새삼 고맙고 감격스러운 일임을 깨닫는 중이다.
정말이지,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2025.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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