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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 thoughts

나는 늘 죽음을 염두하고 있다

날라리 빵꾸인생 2020. 4. 23. 18:39

: 메멘토모리

그러니까 메멘토모리를 알았던 건 한 십 년 전쯤, 이십년 전쯤(?) 이성복의 책 때문이었고,
읽을 당시에는 크게 영향을 받아 평생 기억할 것 같았던 책 제목은 지금 암만 네이버를 찾고 머릿속을 헤매어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래서 더욱, 아, 내가 육체의 쇠락,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구나 느껴보기도 하는데, 
어젯밤만 해도 코로나 시대에 수영이고 뭐고, 움직이는 건 전혀 하지 않는 내 몸이 안녕하신가 질문하던 차에,
혹시 이대로 깨어나지 않는대도 괜찮다, 괜시리 죽음을 끌어다붙이며
메모장에 "나는 늘 죽음을 염두하고 있다"를 써 놓았다. 

"나는 늘 죽음을 염두하고 있다."

죽음을 일상에 끌어들이는 버릇은 한 십여 년이 된 듯하다. 매년 심한 동서부정맥으로 언제 심장이 멈출 지 모른다는 건강진단서를 받고, 이만큼 살아오면서 생명이란 것이, 존재라는 것이 그 얼마나 거대할 수 있으며 동시에 참으로 하찮고 무차별한 것인지를 경험하고, 그리하여 내가 어느때 어디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그야말로,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고, 죽음에 묻고, 죽음을 빗대면서 순간을 결정하곤 했다. 

"지금 이 일은 내가 내일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일이겠지?"
"이렇게 화창한 날, 피아노 앞에 앉아 있음은 오늘이 인생에 마지막이라 해도 내가 선택할 일이야." 
"내게 남은 시간이 딱 한 시간이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걷고, 수영하고, 피아노 치고, 맛있는 된장 얹어 쌈 싸먹는 일상이야." 

암만, 죽음을 기억한다고 해도 죽음에 태연해지는 일이야 없겠지만, 적어도 죽는다고 마냥 두렵지는 않다. 내 삶의 마지막날이라 해도 나는 이 순간을 선택할 것이라는 믿음은 막연히 떠돌던 "나,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더 이상 불러일으키지 않으며, 동시에 바로 그 순간에 의문 없이 최선을 다 하고, 그 시간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버림 없이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이 죽음이 주는 선물이라 해야 할까. 그리하여 나의 이러한 충만함을, 적어도 내 사랑하는 사람들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혹여 예상치 못하게 어느 순간 내가 이 자리를 떠난다해도, 항상 온전히 즐기었음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나는 늘 죽음을 염두하고 있다. 그러니 혹시 내가 예상치 못한 불의의 사고로, 어느날 갑작스런 심장의 정지로 죽음을 맞는다 하더라도,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살다 간 것이니, 남은 자들이여, 연민을 갖지 말아라, 나는 늘, 온전히 즐기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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