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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르니로 살펴본, 나의 레슨 쌤 경험기

곡을 연습하거나 레슨하면서 
“자, 이번 곡은 이제 다 익혔으니, 이만 다음 곡으로 넘어가볼까”며 
페이지를 넘긴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게 체르니이든 곡이든, 클래식이든 뉴에이지이든 심지어 가요든 말이다. 
그나마 작품곡들은 “지금은 아쉽지만, 언젠가 또 다시 연습하자”는 마음으로 (예를 들어 바흐의 인터메쪼는 가을용 곡이니, 이번 가을에 다시 완성을 기해보자며) 손을 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선생님과 같이 레슨을 하는 체르니는 대체 언제 다음 곡으로 넘어가야 할지 감이 전혀 없다. 

엊그제 체르니 4번은 악보를 본 지 불과 한 주 만에 넘어가자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전에 체르니 3번은 1시간씩 주구장창 연습해도 한 달을 넘게 붙잡고 있었다. (아 정말, 손가락이 자꾸 꼬이고, 맘만 급해져서 악보를 다 외웠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페지오를 구현해야 하는 손가락은 자꾸 엄한 곳을 누르기 일쑤였다. ㅠㅠ) 

나는 모르겠는 선생님의 기준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레슨에는 체르니 4번 중 아직 멈칫거리는 후반부의 특정 부분만 다음 시간에 다시 확인하기로 하고, 5번의 악보를 짚어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사실 내가 보기엔 양손으로 만들어내는 화음이 무척이나 불완전하고, 아직 강약 리듬이나 소리도 살리지 못했는데 말이다. (사실 들어간 지 한 주밖에 안 지나서 당연히 다음 시간에도 계속 이어지겠거니 하며, 슬슬 연습하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넘어가자니 다소 깜놀했달까. ㅎㅎ;;) 

체르니,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기준이 과연 뭘까? 

체르니 교재는 벌써 4분의 선생님과 함께했다. 
그러니까 체르니 100이 두 분, 체르니 30이 두 분이랄까. 
체르니 100을 다시 시작하던 당시(벌써 10년 전인가)에는 동네 꼬맹이들과 같이 배우는 학원 시스템이었어서 방에 들어가 연습하고 있으면 선생님이 잠깐 와서 봐주고, 연습하고, 끝나기 전에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숙제 받아 나오는 환경이었고, 당시는 주구장창 처박혀 있던 작업실을 그만둔 직후였던지라, 순전히 퇴근 후 넘쳐나는 시간 때우기용이었다. 당연히 집에 피아노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작정 시작한 터라 마땅히 열정도, 의지도, 목표도 없는 터였다. (아, 나의 시작은 그러했구나, 새삼 돌아보게 된다.) 당시 선생님은 간결하게 해야 할 부분만 딱 짚어주고 바쁘게 자리를 떠난지라, 혼자 남은 방에서 아무 부담 없이 이것저것 눌러보고(심지어 학교종이 땡땡땡, 고향생각 등), 초딩 때 친구들과 같이 놀던 기억들이 떠올라 재밌어 하던 게 당시 레슨의 전부다. 다만, 선생님은 꼬맹이들 틈에 섞여 있는 내가 재밌었는지 나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고, 비슷한 연배였던지라 비슷한 관심사로 수다 나누는 재미가 또 있었다. 
세종으로 짐 싸들고 내려오는 통에 선생님과 헤어지며, 다소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세종에 와서는, 정말 당시는 학원이고 뭐고, 심지어 마트도 없는 세종시였어서 피아노는 꿈도 못 꾸고, 그저 온전히 살기 위해 애썼다. 매 주말은 서울이나 광주에 내려가 그나마 숨통을 텄고, 그러자니 또 주중은 매우 피곤해서 나를 위한 여가생활, 취미생활은 꿈도 못 꾸었다. 수영도 못해 허리는 점점 삐그덕거렸고, 급기야 허리 고장을 막기 위해 종종 대전으로 수영장 투어를 해야 하는, 그야말로 세베리아 시절이 한 2~3년 이어졌다. (당시 내가 세종에서 도망 갈 궁리가 아니라, 세종에서 살 궁리를 하며 재테크에 관심이 있었더면 하는 후회가 매우 깊으다. 이런.) 

그렇게 아무 생각 없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눈에 들어온 게 아파트 게시판에 걸린 개인레슨 홍보지였다. 아침 8시부터 레슨 가능하다는 문구에 눈이 트여 혹시 20분 당겨 수업이 가능한지를 확인하고, 다소 머뭇거리는 대답이었으나 가능하다는 대답에 냉큼 담날부터 약속 잡아 일주일에 2번 레슨을 시작했다. 7시 40분, 벨을 누르면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쌤이 푸석푸석한 머리를 가다듬으며 나를 맞아주던 게 생각난다.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금 감사를 드린다, 그 시간에 레슨 받겠다는 나를 맞아주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 격이다. ㅜㅜ) 처음 대면하는 날, 선생님은 체르니 100을 몇 군데 쳐보게 하더니,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냥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했고, 체르니와 하농, 이후에는 부르크뮐러를 병행하게 했다.
이때는 체르니보다는 하농에 좀 더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하농에 꾀를 좀 부리고 싶어도 선생님이 레슨 시간 내내 부점이며, 속도 올리는 거며 따박따박 치게 하니, 도저히 연습을 아니 할 수가 없었고, 그렇다 보니 이때 나의 손이 좀 유연해지고 힘이 빠지고 손가락 힘도 생긴 게 아닌가 짐작한다. 이때 체르니는 딱 틀리지 않고, 한 곡에서 동일한 박자를 유지하면 다음 곡으로 넘어갔다. 속도가 아무리 느리더라도 변함없이 일정하되, 곡 내에서 미스터치가 없어야 한다. 당시 이른 아침이었기에 손도, 머리도 깨어나지 않는 시각에, 그것도 선생님 옆에서 안 틀리기란 너무 어렵다는 항변이 받아들여져, 틀리지 않는 녹화본을 보여주고 곡을 넘어간 경우도 있었다. 하하.. 지금 같아서는 한 곡을 치는 데 한 달이 걸리든, 두 달이 걸리든 연습하면서 이리저리 쳐보는 것도 재밌었을 텐데, 당시는 곡을 빨리 넘기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도 한몫 했다. 제대로 된 한 곡을 녹화하기까지 정말 수십 번은 쳐야 했음에도 체르니 100을 빨리 넘기고 싶었다. (이때의 한숨을 용량으로 측정하면 한 20년치 정도 되려나 ㅠㅠ)
체르니 30으로 넘어가서도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2번까지 레슨받다가, 지금의 연습실이 있는 피아노 학원을 알게 되면서 옮겼다. (아마도 연습실을 쓸 수 있는 환경이었더라면, 나는 옮기지 않았을 터이다)

처음에는 원장 선생님이었다. 여전히 나를 보면 생글생글 웃으시는 환한 달덩이 같은 원장 선생님. ^^ 이전 선생님과 레슨하면서 체르니 30의 1번과 2번은 넘어갔던지라 첫 수업 날 자신 있게 쳐보는데, 일단 그랜드 앞이어서 먼저 주눅이 들고, 처음 만져본 스타인웨이의 건반이 너무 가벼워 깜짝 놀랐고, 그래서 손가락은 제 갈 길을 잃어 방황하고 소리는 자꾸 날아가고, 그렇다 보니 멘탈은 붕괴하여, 첫날은 내가 어쨌는지 기억이 전혀 없다. 그리하여 원장 쌤과도 체르니 30의 1번부터 다시 시작했고, 그러는 중 원장 쌤은 나의 손가락과 손모양에 주목하여, 그 1번을 넘기는 데 거의 한 달 넘게 소요됐다. 원장 쌤은 손모양을 지키는 걸 집요하게 요구했다. 처음에는 습관을 바꾸는 게 너무 어려워 의구심과 딴 생각, 오만가지 잡생각들이 일었으나, 손모양을 지키지 않으면 속도가 빨라질수록 통증이 온다는 걸 경험하게 되자, 전적으로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손모양에 대한 잔소리를 듣게 되지 않기까지 꼬박 6개월이 걸렸다. (그런데도 내 손은, 신경 쓰지 않으면, 가끔 아치가 무너진다. ㅜㅜ) 그리고 체르니는 틀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수업 중에 원장 쌤이 요구하는 속도로 나도 모르게 연주하게 될 때, (순전히 나도 모르게 그리 된다, 어찌 된 일인지. 나도 놀랬다) 다음 번호로 넘어갔다. 그러자면 연습 때 이미 곡이 내 것이 되어 있어야 하고, 미스터치가 일어나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어야 하고, 당연히 악보의 흐름은 거의 암보 수준이 되어 있어야 한다. 아마도 이게 원장 쌤의 수업방식이고, 우리 학원 학생들이 여타 대회에서 상을 휩쓰는 가장 큰 원인이지 싶다. 소화되지 않으면 절대 넘어가지 않고, 지켜야 하는 것들은 어떻게든 지키도록 요구한다, 그게 전공자이든 학생이든, 성인이든 말이다. 
원장 쌤의 방식을 따르는 건 매우 어렵고 고통스럽기까지 한 일이다. 그러나 그대로 따라하다 보면 정말 실력이 월등해질 것 같은 확신이 든 달까. 레슨 받으면서 나도 모르게 인템포가 되는 신기루 같은 현상도 마주하다 보니, 정말 그 순간은 그간의 고통이 확 사라지고, 잠자리에 눕는 순간까지 감동의 도가니이다. 

코로나로 1년 정도 쉬고 지금의 선생님을 만났다. 아직은 대학원생이고, 휴학하는 동안 학원 선생님으로 왔다가 성인반이 재오픈하면서 만나게 된 선생님. 이 분과 체르니 30을 끝냈고, 이제 40을 같이 시작하고 있다. 헌데 쌤이 체르니를 넘기는 방식이, 나로서는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무려 1년 넘게 같이 레슨하고 있는데 말이다. 어느 날은 아예 맘을 비우고 다음 시간에도 연습하면 되지 뭐, 하고 갔는데 다음 곡으로 넘어간다거나 또 어느 곡은 오늘은 넘어가겠지 했는데, 선생님은 다음 시간에도 다시 살펴보자고 하신다거나.. 그런데 또 귀신같은 건, 내가 자신 없던 부분이 잘 넘어갔다 싶었는데 선생님은 반드시 알아채고 다시 쳐보라 하신다. 그럼 여지없이 틀리는 나. >,<

문득 드는 생각으로는 각 곡마다 배워야 하는 그 상황을 기준으로 해결되었다 싶으면 넘어가는 게 아닌가 한다. 그러니까 지난 체르니 3번의 아르페지오는 화음별 아르페지오를 구현해야 하는데 그게 안 돼서 한 달 넘게 잡고 있었고, 4번은 가벼운 트릴인데 왼손, 오른손의 트릴은 그닥 어렵지 않아 해서인지 양손 맞추는 게 다소 불완전했지만 선생님은 다음 곡으로 넘어가자 하신 게 아닐까. (물어본 적 없고, 순전히 나의 추측이다.) 

어느 방식이 더 좋다, 나쁘다 얘기하려는 건 아니다. 어느 분이든 나로서는 배우게 되는 요소들이 있었고, 배움을 떠나 피아노를 즐길 수 있게 해주신데 대한 감사함은 모두에게 동일하다. 또한 처음부터 얘기했듯이 피아노를 익히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다, 나의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고, 나의 열정과 의지가 불타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다만, 그동안 겪은 선생님들도 이렇게나 다른 티칭 방식인데 세상의 많은 선생님들은 또 제각각 얼마나 다양한 방식과 팁들이 있을까를 생각하면, 그 중에서 나와 맞는, 나에 적절한 방식으로 훈련시키는 분들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다. 

레슨은 돈 버는 동안은 계속할 작정이라서 내가 레슨곡 이외를 연습하거나 체르니 30이나 100으로 다시 돌아가 인템포를 맞추기 위해 연습한다거나 할 만한 시간적인 여유는 없겠지만, 곡들의 특성이나 느낌들을 살리는 노력은 언젠가 다시 하고 싶다. 이후에 체르니 40을 마친다면 그때는 다시 30으로 돌아가 제대로 쳐보고 싶달까. ㅎㅎㅎㅎ

그런데 그때는 과연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곡을 기꺼이 놓아줄 수 있을까. --;;; 

2022.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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