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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자에게 일상이란 사치인가
몸무게의 10% 중량이 적당하다고들 한다. 800킬로를 걷는 40여 일 동안 짊어질 배낭의 무게가 말이다. 그러나 이는 필요한 물품의 무게라는 뜻은 아니다. 이는 그저 내가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무게라는 의미이고, 그만큼만 배낭에 담아야 비로소 끝까지 걸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내 몸무게는 50킬로그램 정도이다. 따라서 짐의 무게는 5킬로만 허용된다. 그런데 내 가방은 이미 7킬로그램을 넘어섰다. 몇날 며칠을 쌌다 풀었다 고르고 고른 짐인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한참이나 벗어났다. 아, 이제 무엇을 더 빼야 한단 말인가.
옷도 위 아래 하나, 속옷이나 양말도 하나, 슬리퍼와 운동화 하나, 간단한 비상약과 비누, 치약, 칫솔, 그리고 화장품들. 여기에 산티아고라는 특성상 우비와 침낭, 무릎보호대, 스틱, 모자, 선글라스, 버프, 근육이완연고 등이 포함되었다. 자 그 다음엔 보조밧데리, 충전기들이다. 무게가 더해질까 하여 등산복 긴바지도 7부 바지로 짤뚱하게 자르고, 치약도 로션도 모두 반쯤 담긴 것들로만 담았다. 일기장 역시 해당하는 7월, 8월 페이지만 잘라 담았고 수첩도 몇 장 잘라 담았을 뿐이다. 내가 사치라는 걸 알지만, 구태여 고집하는 것은 나의 정체성인 블루투스 키보드와 일기장용 만년필뿐이다. 여기에서 무엇을 더 빼야 하는 걸까.
가끔 심신의 안정이 필요하다거나 전환이 필요할 때 바르던 에센스 오일이나,
치약만으로는 개운하지 않아 덧붙여 쓰던 송진가루라거나,
어딜 나설 때면 항상 챙겨들던 텀블러라거나 전용 손수건,
비닐봉지 덜 쓰겠다며 항상 들고다니던 경량 에코백,
그리고 물에 항상 타먹던 녹차가루.. 등은 이미 가방에 수백번은 드나들다가 결국 오늘아침 출발할 때 현관 앞에 살포시 놓고 나왔다. 여행자에게 일상을 누리는 건, 게다가 순례자에게 일상이란 사치에 불과하다.
이번 산티아고길을 통해서 내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바뀔런지는 사실 나도 잘모른다. 하지만 걷기도 전인 짐을 싸는 시점부터 참 많은 생각이 든다. 필요와 욕심의 가늠, 선택과 포기에 대한 감당. 게다가 지금은 과연 가능할까 싶은 이 배낭의 무게가 어쩌면. 사는 데에도 충분하다고 자각하게 되지 않을지, 그렇게 내 삶의 무게 역시 좀 덜어낼 수 있지 않을지 기대해본다. 내가 바라는 바이다.
2024. 7. 9.
인천공항 대한항공 라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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