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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집과의 동거동락
걷는 자에게 물집의 있고 없음은 걸음의 질을 결정하는 조건이 되며, 카미노 길을 행복하게 또는 고통스럽게 만드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말의 의미는 물집을 경험해본 자만이 알 수 있다. 나는 다행히 아직 생기지 않았지만, 오늘도 두 명의 발에 생긴 물집에 바늘을 꽂아주었다. 잘 아물기를.
작년에 12킬로그램 배낭을 메고 이틀 동안 60킬로를 넘는 행군을 하면서 물집을 처음 경험했다. 게다가 초짜인 주제에 당시 베테랑의 발걸음을 쫓아가자니 당연히 물집은 첫 날부터 생겨났고, 둘째 날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때의 경험으로 물집이 생겨날 때의 느낌은 어떤지, 왜 생겨나는지, 처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된 점은 지금으로서는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날의 기억은 지금도 동해바다를 보면 동시에 걸음마다의 통증을 연상케 한다. 매우 슬픈 일이다.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물집은 신중하지 못한 발걸음에서 비롯된다. 애초에 마찰로 인한 열과 그 열을 식히기 위해 몸의 방어기제인 물이 생겨 물집이 만들어지는 것이니, 열이 난다면 딛는 걸음의 체중을 분산하고, 발의 면적을 넒게 하며, 그게 안 된다면 멈춰서 발을 식혀주면 된다.
그러나 40일을 매일같이 걷는 이들에게 물집이 안 생길 수는 없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숙명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물집의 조짐이 느껴지면 무조건 발걸음을 늦추고 호흡을 바로한다.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디거나 습관처럼 내딛으면 다시 물집의 조짐인 찌릿한 뜨끈함이 밀려온다. 아뿔싸. 숨을 가다듬고, 정신을 바짝 차린다. 한 걸음, 한 걸음 성실하게 걸어야 물집을 늦출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속도를 지킨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를 지나쳐 앞서가는 사람들을 그냥 보내는 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체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고, 그저 무릎과 발바닥을 보호하자니 보내는 거라고 뒤에서 표정으로 항변하는 것도 무용한 일이다.
다만, 중요한 게 무엇인지 거듭 되뇐다. 나는 콤포스텔라까지 남은 700미터를 온전하게 두 발로 걷고 싶으며, 그 과정에서 물집과 무릎의 통증으로 인한 고통이 아닌 내 몸과 마음의 변화를 느끼고,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온전히 감상하고 싶을 뿐이다.
앞서가는 이들에게, 인사를 보낸다,
그래, 당신들이여, Adios, asta luego!
2024.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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