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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 연습에 목표점이 생겼다.

하루에 1시간은 어떻게 하든 피아노 앞에 앉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피아노 학원의 첫 번째 조건 역시 레슨 선생님의 실력보다는 아무 때고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스스로의 연습이 우선되어야 할 시기이고, 또한 내 연습의 전적인 목적이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이고 낮이고, 새벽이고간에 제약 없이 들릴 수 있어야 하고, 스스로도 영 몸 상태가 나쁘지 않고서는 웬만하면 일단은 학원에 가려고 노력한다. 그게 30분이든, 3시간이든 말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피아노 앞에 앉는 시간보다 연습하는 방식이나 집중력의 정도가 더욱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암만 시간을 많이 투자한다고 해도 집중해서 악보를 보고, 집중해서 연습하지 않으면 곡을 외우거나 내것화할 수 없었고, 반대로 단 10분이라도 안 되는 부분만 선별해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손가락에 체득되고 머리에 악보다 구조화되어 금방 습득되는 겅험 때문이다. 게다가 재능이 없는 나로서는 효율적인 연습방식을 습득하지 않으면, 틀리는 곳은 계속 틀리고, 연주라기보다는 정말 연습에 지나지 않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음을, 오랜 시간이 지난 요즘 드디어 깨달았다고 할까. 

연습 역시 무턱대고 연습하는 건 생각 없이 되는 대로 살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음을 말이다. 

그래서 지금 나의 연습방식은 또 어떠한지 뜯어보고, 어떻게 연습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나의 피아노 연습 시간은 대충 이렇다. 일단 자리에 앉으면 악보 없이 어제 안 되던 부분을 기억에 의지해 다시 손가락으로 짚어본다. 예를 들어 손가락 4, 5번의 트릴이라든지, 트릴과 16분음표의 연결이라든지, 옥타브 간 도, 솔, 도미의 도약이라든지, 잘 안 되던 그 구간만을 짚어 다시 연습해본다. 그리고 또 기억 나는 부분까지 연주해보고, 틀리면 틀리는 대로 일단 악보를 보지 않고 소리를 열심히 만들어본다. 그리고 더는 기억이 안 날때, 영 소리가 이상할 때 하농을 펼쳐든다. 이제 본격적으로 진도를 나가는 셈이다, 나로서는. 

하농을 하기 전에는 왼손과 오른손의 힘을 빼거나 손목을 내리는 연습을 좀 한다. 어쩌다가 체르니 13번을 넘기며 체득했던 연습법이랄까. 왼손에 힘이 빠질때까지 레/파샵라와 레/라도, 레/도미를 8분음표로 연달아 치고 , 오른손의 손등뼈가 올라가는 느낌, 손목을 올리지 않는 감을 다시 한 번 잡고서 하농의 연습 페이지로 진격, 자, 숨을 가다듬고 Tempo 140에 주루룩 한 번 친다. 안 되면 부점이나 리듬, 강세 등에 변화를 주어 힘빼기와 소리 내기를 연습하고, 다시 Tempo 150에 도전. 대부분 150에서 160 넘어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 특히 4, 5번의 트릴을 요하는 곡은 더욱 그렇다. 손에 계속해서 힘이 들어가고, 어떻게 해도 빠지지 않고 굳어지기 시작하면 책을 덮는다. 더 연습한다 해도 당장 Tempo를 올리는 건 불가능하고 손에 무리만 더할 뿐이다. 단, 나는 안다. 내일이면 오늘보다는 속도가 조금 더 빨라져 있을 거라는걸. 내가 자는 동안에서 내 손과 머리는 하농의 리듬과 템포를 기억하고 있다는걸. 내가 하농을 꾸준히 연습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 이제 체르니다. 지금의 선생님과 레슨하기 전에 내게 체르니는 참 재미없는 책이었다. 그저 단순하게 스킬 함양을 위한 도구로 느껴졌고, 지루한 손놀림을 강조한 책!이라는 게 나의 인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선생님은 체르니도 재밌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단순히 악보를 피아노 건반으로 옮기는 게 아니라, 그 악보를 어떻게 옮기느냐에 따라서 때로는 재밌거나, 긴장 가득한 음악이 될 수도 있음을 알려주었다고 해야 할까. 단, 그만큼 생각할 게 많고, 주의할 게 많고, 외워야 할 것도 많다. ㅠㅠ 그래서 일단은 지난 시간에 연습하던 부분에 집중해서 한 번 더 연습한다. 또 레슨시간에 선생님이 요청했던 부분을 기억해 다시 주의해서 쳐본다. 아, 제대로 될리가 없다. 그냥 반복할밖에. 그리고 처음부터 쳐 보고, 속도를 높여보고, 강세를 주어야 할 부분을 기억해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해보고, 틀리는 부분은 아예 외워버리려고 왼손, 오른손을 따로 연습해 보기도 한다. 심지어 페이지를 넘겨야 해서 연결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페이지를 복사해 옆에 붙여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눈에도, 손에도, 그리고 기억에도 익숙하게 해 놓아야 비로소 틀리지 않게 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그럼에도 틀린다, 젠장.) 이런 연습의 반복이 한 달쯤 쌓이면, 그래서 레슨 시간에 선생님이 주문하는 속도를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어느 구간에서 시작하든 곡의 느낌을 살려낼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체르니의 다음 번호로 넘어간다. 숙제가 더 많아진다. ㅠㅠ

여튼, 체르니가 지난 번보다는 조금 부드러워졌다 싶으면 더 욕심 내지 않고 곡을 펼친다. 체르니도 매일매일 계속하는 곡이다. 몇 마디일지라도 단 한 번에 완성되거나 완벽해질 수 없다. 욕심 내면 탈만 날 뿐이다. 자, 이제 곡이다. ㅠㅠ 곡을 펼치고 나면 할 게 너무 많다. 으악. 여기에 쓸 수가 없을 만큼.... 그러다 좀 지루하다 싶으면, 이전에 대충 완성했던 곡(아니 선생님과의 레슨이 마무리된 곡이라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지금이라면 '핀탄왈츠' 정도. 과연 곡의 완성이란 도대체 가능할까? --;)을 쳐본다. 이때는 긴장이라고는 1도 없이 그저 재미의 수준이다. 그러다가 여전히 틀리거나 소리가 이상하거나 뭔가 헷갈리는 부분이 발생하면, 그날 레슨곡의 연습은 망했다. 다시 핀탄왈츠를 손보고 있으니 말이다. 

이게 나의 연습이다. 그럼, 이제 내 연습에 수정을 가하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 

1. 악보를 제대로 보고, 끝까지 보고, 손보다 앞서서 보기

참 바뀌지 않는 나의 고질병이다. 그래서 눈을 안 떼기로 하고, 잘못 보는 구간은 아예 계이름을 소리내어 읽으며 쳐보기도 하는데.. 딱 연습할 때뿐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다시 내 눈은 건반을 향해 있고, 기억이 안 나 멈칫대는 구간이 발생한다. 으악~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는데도 바뀌지 않는 습성. 습관. 관성. 빌어먹을... 

2. 안 되는 부분에 대한 철저한 집중연습과 몰입이 필요하다. 

몸 쓰는 일이 다 그렇듯 내 손가락도 저 편한 대로 움직인다. 그렇다 보니 안 되는 부분은 절대 개선되지 않고 안 하고 싶고, 잘 되고 소리가 예쁜 부분은 할수록 재밌고, 더 하고 싶기 마련이다. 그런데 연습이란 안 되는 부분에 더 집중해야 하고, 안 되는 부분을 바꾸려 노력해야 하는 시간이다. 아무리 하기 싫어도, 아무리 손이 뻣뻣해지고, 소리가 들쑥날쑥 듣기 싫어도 말이다. 무척이나 다행인거고, 어쨋든 포기하지 않게 하는 진리는,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다 보면 결국 바뀐다는 점이다. 시간이 다소 걸리긴 하지만 소리도 자세도 모두 부드러워지고, 원하던 대로 움직여진다. 이런 결과는 요가할 때도 느꼈던 점이다. 뻣뻣한 나무토막이던 몸이 몇 개월이 지나자 조금은 부드러워지고, 거칠었던 호흡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영 어색하기만 하고 힘만 뻣뻣하게 들어가던 손가락도 일주일, 한 달 꼬박 연습하면 익숙해지고 부드러워진다. 중요한 건, 기억해 집중하고 몰입하는 연습이다. 그리고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도 파악하자. 

3. 곡을 부르면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구조화해서 머릿속에 입력하기 

최근 레슨시간마다 요청받는 주문은 곡을 속으로 불러보며 연주하라는 거다. 이제 악보가 익숙해졌을 테니 악보보다는 곡의 흐름을 되뇌이며 연주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로서는 사실 그 수준이 아니라 아직 간신히 악보를 옮기는 수준이라는 항변을 하고 싶지만, 별 의미가 없음을 알기에, 흥얼거리는 척이라도 일단은 한다. 헌데 그러다 보면 손가락이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조금은 부드러워지고, 소리의 분위기도 조금은 바뀐다는 걸 눈치챘다. (선생님은 꼭 귀신같이 짚어내고, 그대로 따라하면 뭔가 분명한 변화가 있다.) 그제서야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음악을 많이 듣는다는 점도 떠올랐다. 단순히 연주를 하는 게 아니라, 음악을 살리는 작업이다, 피아노를 친다는 건. 게다가 곡을 기억하며 연주하다 보니 반복할수록 머릿속에 구조화되기도 했다. 

구조화된다는 것은, 곧 학문으로 따지자면 개념화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연주에 있어 무척이나 중요한 작업이다. 단순히 암기하고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손가락으로 연주하면서 그 구조를 깨우치는건 언제 어디서고 절대 틀리지 않는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렇게 구조화하는 건 악보를 많이 보고 치기보다, 많이 듣고 손가락보다 먼저 곡을 기억해 연주하는 연습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이는 물론 나에게만 적용되는 과정일지 모르지만, 여튼 나로서는 선생님의 조언과 실제 연습해 본 결과 터득한 결과다. 그래서 더욱 지키고 싶은 연습 목표이기도 하다. 

4. 이제는 조성을, 화음을, 폴리리듬이라는 것을, 고전과 낭만 음악의 차이 등을 알고 연습하자. 

피아노와 함께한 시간만큼 욕심이 생겼다고 하자. 이제는 악보를 잘 옮기는 것뿐만 아니라 음악을 알고 싶고 음악을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지금 내가 연습하는 체르니 15번이 무엇을 위한 연습인지도 알고 싶고, 조성 및 화음으로 곡의 분위기도 먼저 예측하고 싶고... (ㅋ 하고 싶은 것만 많네 ㅠㅠ) 그래서 연습이 아니라 공부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1년 후에는 피아노의 관점에서 또 내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모른다. 다만,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알고 있고, 방향성을 제대로 잡고 있다면 무엇보다 성장해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조금 더 즐겁고, 조금 더 행복한 연주를 하는 나로 말이다. 

2020.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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