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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할 곡을 찾는 어려움, 나는 나를 아직도 모르겠다
씸 언니는 선생님에게서 비창 3악장을 추천받아 치고 있다. 추천이기도 했지만 씸 언니의 선택이기도 했다. 피아노를 시작하면서 치고 싶어 하는 곡이 많았던 언니는 신이 났는지 한동안 연습에 매진하더니 악보를 다 외워 버리고 한창 부분연습 중이다. (암보는 진짜 완전 부러운 언니의 재능이며, 한동안 시기 질투도 했다, 나는 암보는커녕 악보 읽는 것도 왜 일케 더디냐며 투덜대면서.. 흠, 연습이나 더 할 일이지 --;) 가끔 어려운 기술을 요하는 부분이 짜증난다며 투덜대지만, 나는 안다, 그것도 즐거움의 표현 방식인 것을. 여튼.
나 역시 1년 동안 잡고 있던 부르크뮐러를 드디어 장엄하게 끝내면서 무슨 곡을 치고 싶은지 질문을 받는데, 딱히 떠오르는 곡이 없다. 그저 한다는 대답이 “어둡고 슬픈 곡이요.”란다. 나 원 참... 이게 무슨 어이없는 대답이란 말인가. 피식 웃고 찾아보겠노라고 하고서, 자, 그때부터 고민인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무슨 곡을 연주하고 싶은 걸까.
처음에는 나의 수준을 잘 모르겠어서, 수준에 맞는 곡을 또 잘 모르겠어서 선택을 못하는 것인가 생각도 했다. 그래서 블로그나 카페 등을 찾아보고 수준에 맞는 곡들의 리스트를 찾아 들어보기도 하고 악보를 살펴보기도 했다. 그런데 역시나, 딱히 이거다! 하고 마음에 드는 곡이 없다. 모차르트의 소나타들은 다소 가볍고 촐랑대는 느낌이 싫고, 예전에 잠시 붙잡고 있던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는 아름답고 우아하나 도입 부분의 폴리 리듬 익히는 데도 한참이 걸렸던지라 다시 씨름하기가 겁이 났고, 쇼팽의 발라드 역시 겁주는 조언들이 많아 선뜻 손을 대기가 겁이 났다. 예전부터 마음에 담아두었던 차이코프스키의 뱃노래는 악보를 못 찾겠고(이걸 보니 없지는 않구나. --;), 도대체 무얼 연주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어서 잠도 못 자고 유튜브를 헤매며 피아노 연주를 들어보는 날이 며칠이었다. 눈가에 다크써클만 생겨가고, 다음 곡 찾기가 이렇게 어려울 만한 일인가 고민하게 되고, 급기야 그 질문은 내가 왜 피아노를 치는가에 대한 분석으로까지 넘어가는 것이었다.
“도대체 나는 치고 싶은 곡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연습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게 말이다. (언젠가 내가 연습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 오늘은 일단 곡 선정에 대한 어려움이 먼저이므로)
나는 여전히 나를 모른다.
안되겠어서 눈을 감고 좋아하는 피아노곡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차이코프스키를 비롯해 몇 작가들의 뱃노래들,
쇼팽의 장송행진곡,
모차르트의 환타지,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이것밖에 없나?
몇 가지 피아노협주곡과 또 교향곡들. 바흐의 첼로들... 파가니니의 바이올린과 리스트의 피아노...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기억력의 한계인지 정말 음악을 몰라서인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더 생각나는 것이 없다. 게다가 리스트에 나열된 곡은 대부분 전공을 했거나, 앞두거나 목표로 연주하는 사람들의 리스트이므로 당연히 나는 손을 댈 수가 없다.
실력도 부족하고, 아는 것도 쥐뿔 없다 보니 곡을 선정하는 것만도 좌절의 연속이다. 이대로 ‘나의’ 곡을 못 찾고, 선생님이 주는 곡을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우울하던 차에 문득 짬짬이 연습하던 핀탄왈츠가 생각났다. 이 곡은 씸 언니가 쉬운 편곡버전으로 치던 연주를 듣고 원곡을 찾아 보게 된 곡이다. 핀탄왈츠는 어떤 부분에서 나에게 연습할 동기를 팍팍 불어넣어 주는 걸까. 한 페이지가 죄다 스타카토이고 정말 손에 익어지지 않아서 한동안 씨부럴, 욕을 남발하던 이 곡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었더라. 아마도 곡이 주는 이국적인 맛이 좋아서? 뭔가 발랄한 생기가 아니라 다소 처연함을 담은 생기라서? (순전히 나의 해석이다) 어쩌면 내가 이런 느낌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그러자니 그라나도스의 스페인 무곡이 떠올랐고, 급기야 2번이 할 만하다 싶어 결국 악보를 읽어보고 선생님께도 물어보고 선택하게 되었다.
연습곡 선택이 무슨 입시생 대학 전공 선택 만큼이나 어려웠다. 다음 곡은 또 어떤 방식으로, 어떤 곡을 선택하게 될지.
다른 사람들도 각각 본인의 연습곡을 선택하는 이유가 있을 테다. 나 역시 단순하게는 그 곡이 좋아서이고, 내 수준에 맞거나 조금 노력해서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서가 전제이겠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곡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다음 곡 선택에 우왕좌왕 하지 않을 테다. 게다가 내가 그 곡을 왜 좋아하는지도 좀 기억해두어야겠다.
아, 일단 곡을 선택했으니, 다음은 무엇?
짤 연습이다. ㅜㅜ
2020.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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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돌아다니다가 교향곡을 쉬운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해 놓은 모음집과 오페라 아리아 모음집을 구입했다. 시간 나면 요 녀석들을 좀 공부해봐야겠다. 나 알아가기, 피아노 버전 1!
피아노곡들을 스스로 정리해봐야겠다. 타인의 조언보다는 내 감각과 견해에 의지해서 분류작업을 좀 해봐야겠다, 그리고 공부하잣! 나 알아가기, 피아노 버전 2! - 2020. 07.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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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할 곡을 못 찾았던 경험 때문인지, 이제는 음악을 들으면 내가 칠 수 있을까? 또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인가? 치고 싶은가를 따지고 있다. 또 그렇게 음악을 듣자니 치고 싶은 리스트도 점점 생겨가고 있다. 슈만의 '시인의 사랑'에 한창 꽂혀 있고, 쇼팽의 왈츠에서부터 발라드, 베토벤의 소나타, 슈베르트의 가곡, 기타 소품에 이르기까지... 나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보자면, 그리하여 곡에 대한 개념이 생기고 음악의 아름다움을 되새기며 충분히 즐기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하루 중 셔틀버스에서 음악 듣는 재미가 하나 더 추가되었으니, 참으로 행복한 나날이다. - 2020.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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