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묵시아는 안 간다는 전제하에. 그.러.나.과.연.
오늘까지만 20킬로이고, 내일 피스테라까지는 14킬로 남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개 오늘 조금 많이 걸어 피스테라까지 간다. 그러나 나는 여행자이므로, 굳이 애써 힘들게 걸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진정 나는 쉬고 싶다.
그리하여 새벽에 출발하는 일은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 생각으로 밤하늘을 보는데, 마지막이라 그런지 또 울컥한다.
별들에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는데, 오늘 하늘은 구름에 가려 별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흘러가는 구름 사이로 별 하나가 반짝인다.
새벽이어도 해가 뜨지 않으면 밤이다. 게다가 가로등이나 마을의 현관 등조차도 없는 산길은 정말 깜깜해서 랜턴이든 핸드폰이든 켜지 않으면 암흑이다. 발이 검은 장막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대개는핸드폰 라이트를 켜고 다닌다.
그런데 라이트를 켜면 시야는 광활한 숲과 대지와 하늘이 아니라 라이트의 불이 비추는 곳에만 한정된다. 바로 코 앞, 디딜 곳만 보게 된다. 그러다가 7시 무렵 사방에 파르스름한 빛이 퍼지고 라이트를 끄면, 또 세상은 한결 넒은 폭으로 내게 다가온다.
신기한 일이다. 자세히 보려고 라이트를 켜면 밝고 자세히 보이는 대신 시야의 폭과 세상을 잃는다. 그리고 라이트를 끄고 대지의 빛에 기대면 사물의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나를 둘러싼 세상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2024. 8. 18.
과연 묵시아는 버스로 갈 것인가, 두둥.
'Buen Camino'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빠알간 비빔밥 (0) | 2024.08.18 |
---|---|
푸하하, 갈대로 끓이는 변덕 (0) | 2024.08.18 |
바다에 설레는 길, 쎄 Cee - Camino 38일 차 (0) | 2024.08.18 |
목적지 (0) | 2024.08.17 |
올베이로아 - Camino 37일 차 (0) | 2024.08.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