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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이즈별로 소화하기_슬픈 왈츠(Valse Triste)
이제는 나도 어느새 피아노에 조금은 길들여졌을까. 요즘은 피아노 앞에 앉으면 예전에 느꼈던 막막한 무게감이나 막연한 불안감은 별로 없고
그저 내가 만들어내고 싶은 소리와 리듬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달까. 그러니까 오늘은 한 시간, 두 시간으로 이 곡을 몇 번은 치고 가야지 하는 작정이나 각오이기보다는
이 부분을 어떻게 해야 음악처럼 들리게 하지?에 더 골몰하는 자신을 대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사실 얼마를 치든, 몇 분을 치든지는 상관이 없고, 심지어 두세 번 눌러서 해결되면 그만 집에 가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는, 이른바 약간 날라리의 고수가 되어 간다고 해야 할까,
여튼 그렇다 보니, 피아노 앞에 앉은 내게서 예전의 무언지 모르게 얹혀있던 무게나 좌절감(?), 쓰라린 의지 등은 좀체 느껴지지 않는다.
손가락이 조금 가벼워져서 그런가.
피아노는 진입은 쉬워도 좀 친다고 하기까지(그니까 소리가 투명해진다거나 손가락에 힘이 생긴다거나 악보를 좀 더 익숙하게 봐진다거나 하는 건)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서
누구는 5년은 배워야 어디 가서 피아노 친다 얘기를 할 수 있다거나(그 전에는 그럼 뭐라 하나? --;),
누구는 새 악보 볼 때마다 겪는 초보적 어려움에 아예 재즈피아노로 진입한다거나,
누구는 아예 반주만 배우고 그것으로 됐다며 손을 터는데,
나는 '꾸준함이면 다한 거다' 오롯이 그거 하나 믿고, 온갖 부침을 겪으면서도 '더 바라는 바 없다'며 햇수로 4년을 꾸역꾸역 채워오니
내게도 뭔가가 쌓이는 모양인지 요즘 들어 나의 연습 방법은 기존과 조금 달라졌고 동시에 또 가벼워졌다.
연습단계에서 당연한 수순인지, 또는 게으른 타협의 결정인지는 물론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조금 더 즐거워졌다는 점이다.
요즘 들어 잡고 있는 곡은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이다.
새 선생님과 왈츠를 마무리 짓고, 새로운 곡을 찾아보자 하시기에 담날 대충 뒤지다가 몇 곡 가져간 것들 중 하나인데,
나로서는 악보의 난이도를 보고 결정했다기보다 'Valse Triste'(발스 트리스테, 아, 어감의 비장함이라니..)라는 제목에 홀려 모아두었던 곡이고
사실 포스트잇만 붙여 놓지 않았어도 절대 뒤적여보았을 리 만무한 곡인데...
그런데 선생님 눈에 들었는지 선생님 손에 들린 곡이 바로 그 곡이었기 때문이다. (아, 사설이 길다. 그만큼 지금의 나와는 거리가 너무나도 먼 곡.. ㅜㅜ)
첫날은 완전 당황해서 '도레미파솔라시도' 짚어 가며 악보를 읽다가, 안 되겠다며 다른 곡을 찾아오겠다 하고 나왔는데
들어보니 자꾸, 자꾸 마음이 혹해져서
뭐, 한 1년 붙잡고 슬퍼하면 어케든 되지 않겠느냐며 다음 시간에 다시 들고가서 다시 '도레미파솔라시도' 짚으며 악보를 읽었던 곡이다.
그런지 이제 두어 달이 지난 걸까.
악보는 다 읽었고, 매번 옥타브 짚을 때마다 쥐나던 손도 이제는 그렇지 않고, 앞 부분은 그나마 윗소리며 왈츠 리듬을 조금씩 살려내고 있고(그렇다, 믿고 싶다 --;), 이제는 프레이즈별로 구분해 심상을 키워보겠다며 고심하는 중이다.
물론 그러기까지 손에 안 잡히는 음은 빼고, 도저히 구현이 안 되는 트레몰로는 화이트로 지우고, 음악이라기보다 악보대로 찾아 누르는 수준인 부분도 있지만
여튼 지금은 곡을 프레이즈로 나누고, 연습도 프레이즈별로 하고 나의 목표도 하나의 음악보다는 프레이즈의 구현에 두고 있다.
그런데, 그래서인가?, 연습이 효율적이라는 생각도 문득 들고, 마냥 힘들다기보다 조금 어려운 구간이라는 생각 정도가 더 크고,
처음과는 달리 곡을 대하는 마음도 훨씬 가벼워졌다.
그리고 앞으로도 어떤 곡을 만나든지 조금은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은 근자감이 생기기도 했달까?(ㅋㅋㅋ 울 쌤이 보면 웃겠다)
예전의 곡들은 하은지의 젓가락도, 화음 투성이던 캐리비안해적도, 그리고 쇼팽의 왈츠도 모두 한 곡 전체만 대하다보니 그렇게나 어려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어느 특정 부분이 안 되는 건데, 곡 전체가 안 되는 것처럼 느껴져서 연습할 때마다 좌절감은 늘어만 갔고, 그렇다 보니 내 인생에서 피아노가 주는 무게감이 더했는지도 모른다. (그걸 감내하겠다고 나선 내가 무척이나 안쓰럽더랬다. ㅜㅜ)
그걸 쪼개고 쪼개니 이렇게나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게다가 암보하는 수준도 쉬워졌다. (이건 초절정울트라슈퍼캡짱 대단한 발견이다, 나는 암보란 이번 생에서는 안 되는 모양이라며 포기했던, 그야말로 암포자!였으므로)
프레이즈, 결국 10마디 이내이고, 한 프레이즈는 동일한 화음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아서 손으로 익히기에도 훨씬 쉽다. 그래서 집중도는 높아지고 또한 해결하기도 어렵지 않은 분량이니 성취도도 높아진다.
부분연습의 또 다른 장점이라고 해야 하나. (예전에 내가 생각했던 부분연습은 프레이즈였지만, 어쩌면 단순한 손가락 연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보다는 확실히 스케일이 커졌다고 해야 하나. ^^)
암튼, 요즘의 나는 가볍게 씬나고 있는 중이다, 일도 이만 같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
2021.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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