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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놈, 네 이 놈.

날라리 빵꾸인생 2019. 9. 9. 14:50

: 팩트와 마주하기. (속쓰림 주의)

메트로놈을 처음 알게 된 건, 그 먼 옛날, 드럼을 배우면서부터이다. 밴드에서 박자를 좌우하는 절대 기준이 되는 드럼은, 드럼이 느려지거나 빨라지면 곡 전체가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만큼, 화려한 기교부림은 못한다 해도 밴드에 참여할 수 있지만, 기본 박자가 흔들린다면 밴드에서 쫓겨나게 마련이다. 그런 막중한 임무의 드럼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메트로놈은 스틱과 함께 항상 가방에 들어가 있던 녀석이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그때도 늘상 내 드럼 소리는 메트로놈과 어긋나기가 일쑤였고, 나는 메트로놈이 고장 난 것이라고 항변하다가 밴드를 그만두기도 했었다. --; 

그 녀석을 다시 만났다. 운명이련가. 그렇다면 비운의 만남인 것은 분명하지 싶다. 

그런데 요즘 들어 선생님은 곡을 진행하면서도 메트로놈을 가끔 꺼내신다. 이제 틀리지는 않고 칠 수 있으니, 이제 박자와 속도를 좀 맞춰 보자는 게 선생님의 진의인 듯하다. 물론 메트로놈은 매일의 하농 연습에서 만나는 녀석이다. 조금씩 속도를 올리고, 손가락의 균등한 터치를 조절하는 데 기준이자 척도가 된다. 그런데 곡을 하고자 맞춰본 적은 없었어서, 일단 마음을 가다듬고 80에 맞추고 시작한다. (다소 연습량이 많고, 익숙한 부분인) 처음에는 어설프게나마 맞추어 연주하다가 조금 지나면 자꾸 손가락이 꼬여 정체를 겪다가.. 안 그래도 긴장해서 치던 부분에 이르면 급기야 멈춰버린다. 허걱... 방금 안 틀리고 끝까지 쳤던 곡인데 박자를 정박에 맞추고 나니 뭔가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동안 나는 박자를 못 지켜왔단 말인가. 아님, 아직도 나의 연습이 부족했다는 말인가? 나의 멘붕을 예상했다는 듯이 선생님은 표정 변화조차 없이 조용히 메트로놈의 속도를 내리기 시작한다.

75,

70,

65..

50....

이럴 수가. 결국 그 곡을 메트로놈 50에 맞춰 연습하는 것이 숙제로 남는다. 50이라니.. 이건 자장가나 다름없다고. 이쯤 되면 이제 자존심이 상한다. 그렇지만 내 손가락과 연주가 그 모양이니 또 뭐라 말은 못하고 조용히 책을 덮고 나온다. 윽, 뭔지 모르게 쓰린 속을 부여잡고 말이다. 

그래서 연습실에 앉아 메트로놈을 째려본 다음, 그럼에도 별 수 없어 50에 맞추고 시작한다. 이제 악보를 보지 않아도 곡의 진행은 대충 알고 있어서, 템포에 주의하며 연습을 한다. 그렇지, 역시나 앞 부분은 쉽다. 쉬워도 너무 쉽다. 그도 그럴 것이 곡을 익히는 한두 달 동안 앞부분은 수백(? 오버인가? 수십?은 넘는데...) 번 거듭했을 부분이다. 그런데 막상 좀 어려워했던 부분에 이르면 템포 50도 못 맞추는 수준, 기껏 집중해야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라는 걸 경험하게 된다. 또 한 번의 깨달음. 나는 틀리지 않게 치는 것에 집중하느라 박자고 강약이고 지키지 않았다는 팩트다. 연습을 많이 해서 쉽고 익숙한 부분은 훌러덩 넘어가고, 어려웠던 부분은 내 맘대로 박자를 조정하며 떠듬떠듬 쳤던 나였구나. 울 선생님은 그런 나를 이렇게 깨우치는구나. 그동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나... 

그때부터는 군소리가 없어지고, 템포 50도 내게는 너무 중요한 과정이 된다. 오기나 고집이 사라지고 나의 수준을 인정하게 되면, 그래서 템포 50에 대한 존중과 어려움을 깨닫게 되면 연습이 더 이상 지루해지지 않고, 좀 더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나름의 감각이 생겨나고, 템포도 조금씩 올라간다. 물론 지금까지 연습한 것 이상의 연습이 필요하지만, 템포라는 것에 익숙해지면 그 곡의 인상도 생겨나게 되고, 셈여림도 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 (실제 잘 해내는 것과는 무관하게 --;;)  

혼자서 피아노를 치다 보면, 내가 잘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박자도 잘 지키는 것처럼, 셈여림도 여리고, 때론 강하게, 때론 점점 사라지는 듯이 쳤다고 자부하게 된다, 내가 만들어내는 소리와는 상관없이. 그러다가 녹음이라도 하거나, 이렇게 메트로놈을 켜고 진실을 마주하면 좌절과 절망, 위산 과다를 겪게 된다. 그렇다고 배워가는 초짜인 주제에 이를 모른 척하고, 한 곡만 주구장창 치는 사람으로 남기도 싫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팩트를 받아들이고 내 고집과 아집을 깨트릴 줄 아는 수준의 사람이라는 점이다. 다시 배우는 마음으로 겸허하게 돌아가 이만큼 해왔던 것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한참을 더해야 함을 깨끗이 인정할 줄 안다는 것이랄까. 

삶에서도 메트로놈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느 곳에서 어느 박자를 못 지키며 살아가는지 알려줄 수 있는 기준 같은 것 말이다. 그러면 살면서 인정하고 반성하며 도량이 넓고 깊은 인물이 되었을까나. 

2019.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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