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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장님, 만만세~
은쟁반 위에 옥구슬~,
계곡 타고 흐르는 시냇물의 졸졸졸~,
우아하게 유혹하는 하프의 울림~
콩나물들 옆에 진하게 존재감을 과시하는 물결이 요구하는 건 이런 느낌일 터인데, 나로서는
뚝딱이는 양철사냥꾼(feat. 오즈의 마법사),
온갖 관절이 다 꺾이는 마리오네,
각목 팔다리로 발레하는 나....의 느낌이 된다, 내가 연주하면. ㅜㅜ
그래서 애초에 포기했다. 그 지점만 가면 어느 박자든, 어느 지시문이든 다 무시하고, 그저 음을 연이어 눌러 만들어 내는 것만으로 만족했더랬다. 속도를 올리자니 소리가 뭉개지고, 심지어 약한 3, 4번 손가락이 걸친 음은 박자도 뭉개진다. 도통 방법이 없어 속도를 포기하고 따박따박 소리 내는 데 올인했달까. 들어보면 다른 방에서는 또랑하면서도 맑은 아르페지오가 유려하게 넘나드는데, 대체 나는 어떻게 해도 초보의 아르페지오를 벗어날 길이 없어 보였다. 그냥 시간이 해결해 주기만을 바랐달까.
그래서 물론, 원장님과의 베쏘에서도 마찬가지로, 후반부의 물결에 이르자, 박자고 뭐고 다 접고 일단 눌렀다. --; 깜놀하신 원장님. 당장 멈추고 다시 박자를 맞춰보라, 박자는 안 되도 소리를 유려하게 굴려라 요구하시는데, 나는 한 번도 해본적이 없으니, 그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다. ㅠㅠ
한 번 더, 따박따박 아르페지오를 선사한 뒤 씨익 웃었다. 선생님은 이미 일지에 펜을 들고 쓰셨다.
"물결 부분 10단위로 나누어 연습할 것"
(여기서 일지란, 아주 먼 옛날 꼬맹 때 경험한 바 있는, 포도송이 일지다. 연습 개수만큼 색칠하고, 검사맡고 집에 돌아가던 그 일지.. 그걸 첫날 원장님이 만들어주셨다, 뭐지? 왠지 나는 그게 좋았다, 마치 예전의 나로 돌아간 것처럼)
반신반의지만, 일단 일지에 숙제로 적힌 이상 해야 한다. 시간 많고 마음의 여유 많던 토요일에 메트로놈 켜놓고 만만한 70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10씩 올리기. 그러면 170 되는 지점에 이르면 숙제는 끝난다. 다만, 꼭 소리를 따박따박 온전히 낼 것! 어쩌면 내가 안 될 것이라고 먼저 정해버렸기 때문일까, 사실 170까지 올라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농처럼 같은 음량과 속도로 한 페이지를 170으로 연주하는 건 손목이 굳어가고, 온몸이 굳어가는 정말 어렵고 힘든 과정지만, 물결은 그저 한 마디, 그것도 한 박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래서 70부터 10번씩 반복하고, 한 단계씩 올려 170에 도달하자 너무도 깜짝 놀랬다. 되네? 하는 마음이랄까? 소리도 뭉개지지 않았고, 3, 4번의 어느 손가락도 제멋대로 박자를 어기지도 않았다, 어머나, 내가 한 거 맞음?
아르페지오를 10단위로 나눠 조금씩 속도를 빨리 올리는 건 사실 특별한 지시사항은 아니다. 그런데 왜 이전에는 그렇게 하라고 누군가 알려주지 않았을까, 게다가 나 스스로도 터득할 법한데 말이다. 단지 차이점은 한음한음 모두 소리가 제대로 나도록 눌러야 한다는 점뿐이다.
다음 날에는 시작하는 수준을 높여 100으로 단박에 올렸다. 뭔가 된다는 걸 느끼고 나니, 이참에 확 더 끌어올리고 싶은 마음이어서, 물론 200까지 가는데 쉽지 않았다. 150, 160을 넘어가면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끼게 되고, 주의하지 않으면 박자와 소리가 뭉개진다. 그래서 하나하나 음을 제대로 치기 위해 더 집중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박자를 놓칠 것 같으면 다시 그 이전으로 돌아가서 마음과 태도를 정비하고 다시 도전해본다. 그렇지만, 되었다. 대박. 이게 교수법의 힘일까. 원장님 만만세~
나도 이제 하프 소리 내는 날이 멀지 않았다.
2023.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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