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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꾸락의 배신

날라리 빵꾸인생 2019. 3. 7. 17:37

: 하농, 맛있게 뜯어먹자, 가끔 돌멩이가 씹히더라도 ㅠㅠ

연습실에 처음 등록하고 드나들던 중, 아직 인사만 나누고 서로 서먹서먹하기 그지 없는 원장 선생님을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서, 안부 나누기도 참 그렇고 모른 척 눈 돌리기도 그렇고 그런 날, 원장 선생님의 난데없는 질문,  

"뭐가 제일 어려워요?"

"음..." (다 어려워요라는 답이 입술 끝에 맺히는 순간)

"하농이 좀 어렵지요?" 하셨다. 

나의 똥그래진 눈, 하농이요? 싶었다. 

하농은 사실 손가락운동용 교재이다. 나는 손가락운동을 무슨 조깅이나 헬스처럼 가볍게 얘기했지만, 피아노처럼 손가락이 아니라면 표현하는 방법이 거의 없는 부문(연주장 관객의 적막과 소동이 연주의 주 내용이었던 작품을 제하고)에서 손가락 운동 교재라면 어쩌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요한 교재이고 훈련일 수도 있다. 

여튼 목적이 그러한 까닭에 하농은 패턴의 반복을 통해 손가락의 힘과 독립성, 유연성, 옥타브 넘기 등을 주로 연습한다. 패턴의 반복,이를 쉽게 설명하자면 손가락의 같은 움직임을 한 음씩 옮겨가며 반복하는 연습이다. 처음에는 오른손, 왼손 따로 연습했다가 자리가 익어지면 같이 연습하는데 패턴만 이해하면 단 몇 번 만에 양손 연주가 가능하다. 그래서 생각 없이 할 수 있고, 그래서 나는 "참, 쉽네!" 생각하던 참이었다. (이 무렵 나는 하농의 1, 2번을 쳤을 테다. ㅠㅠ 손가락의 배신을 경험하고 있는 요즘에는 12번을 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나는 하농의 어려움을 깨닫고 있다, 왜 그날 원장선생님은 체르니도 아니고, 하농을 어렵다 하셨는지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다시 하농으로 돌아가 연습법을 짚어보자면, 양손으로 연주가 가능해지면 그 후에는 부점 리듬, 16분음표 리듬, 스타카토 리듬 등 다양한 리듬을 이용해서 변형해 연습하고, 익숙해졌다 싶으면 그때부터 속도전에 돌입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하농의 맛을 보게 되는데, 하농은 악보 첫 머리에 표기된 속도대로 미스터치를 내지 않고 고른 음과 속도를 유지하며 치게 하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다. 처음에는 Tempo '8분음표=100'부터 시작해서 150, 160(4분음표=90이 하농의 권장 속도인걸 생각하면 그의 70퍼센트 수준이다)에 이르기까지 속도를 올리는데, 이 부분이 무려 한 달여 넘게 걸린다. 

여기까지는 오케이~ 게다가 연습 전에 손가락을 풀 요량으로 멍 때리며 하농 치는 재미도 쏠쏠하기 때문에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에는 어이 없는 일들을 겪고 있는 중이다. 

어제 '8분음표=140'을 치고 문제 없이 유지가 되면, 오늘은 '145'로 속도를 올린다. 그리고 어느 정도 연습되고 나면 내일은 '150'으로 올리는 순서이다(물론 설명상이지 하루이틀은 아니다). 그런데 어제 분명히 140을 자연스럽게 넘겼고, 오늘 145로 속도를 맞춰 치는데, 어디에서부터인지 손가락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어긋나자 3, 4번은 또 경직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끝까지 치기 전에 손목의 경련으로 이어져 도중에 그만 두게 된다. 아직 이른 건가? 싶어서 다시 속도를 140으로 맞추고 치는데, 어랏~ 또 음들이 어긋나고 손가락이 굳어가고, 중간에 그만둔다. 뭐지?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속도를 135, 130으로 내려도 마찬가지이다. 급기야 이미 지나온 길을 다시 되돌아 처음의 100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고뇌와 좌절이 시작된다. 

아,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동안 내가 속도를 높이느라 보낸 시간들은 대체 어디로 사라지고, 왜 또다시 100으로 내려온다 말인가, 내 손들은 왜 나를 배신하는가 말이다. 매일 레슨 시작에 하농부터 짚고 넘어가는 선생님 앞에서 나는 이 퇴보에 대해 또 뭐라 할 것인가, 뭔가 한없이 억울해졌다. 

사실, 그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아직 나도 풀어가는 중이다. 단지 하농 11번의 경우 오른손의 3, 4번이 왼손의 3, 4번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불협화음이라는 걸 겨우 알아냈고, 그걸 교정하는 데 일주일 정도를 투자했다. 그리고 지금 12번도 이제 속도를 높여야 하는 시점이 되면 또 어딘가에서 같은 문제가 생겨날 것이다. 그러면 또 열심히 문제점을 찾아내고 그 교정에 힘써야 하겠구나 하는 정도의 경험이랄까. (혹시 아시는 분 있으면 알려주시길요. 복 받으실 거에요. ^^;) 

하농에 대한 견해는 제각각 다르다. 지루해 하는 학생들도 있고(오히려 많고), 쉽다며 훌렁훌렁 페이지를 넘기는 분들도 제법 있고, 심지어 연주할 곡이 세상천지인데 하농은 연습하지 않아도 된다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만약 하농을 하시겠다면 적어도 시간과 공을 들여 제대로 해보심이 어떤가 한다. 가끔 손꾸락의 배신으로 좌절감도 맛보시겠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차근차근 내딛어야 멀리 오래 갈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2019.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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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급한 하농 연습법은 울 쌤의 방법이므로, 본인에 맞는 방법을 찾으셔도 되겠습니다. 언제나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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