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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Camino

산티아고 10km 전

날라리 빵꾸인생 2024. 8. 14. 23:23

: … 아무 생각이 없다

오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차분하면서도 들떠 있다. 어떤 이들은 오늘 산티아고에 입성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아직 10이나 20킬로미터를 남겨두고 있기도 하다. 어쨌든 오늘 길에 있는 사람들은 오늘이나 내일이면 산티아고에 들어간다.
나는 오늘 28킬로 정도를 걷고, 10킬로는 남겨두었다. 대략 일정이 비슷했던 다른 친구들은 내처 40킬로를 걸어 산티아고에 들어간다고 한다. 다들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그래, 너무도 기뻐할 일이다. 기나긴 길들과 날들을 단지 산티아고를 목표로 견뎌왔으니 말이다.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그런데 어째서 10킬로를 남긴 지금,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이제 내일 새벽 6시에 출발해 3시간 정도면 산티아고에 들어가게 되고, 나름 지나온 길들에 대한 감상이나 회한, 또는 여타의 감정들이 나를 휘감을 법한데, 정말이지 아무 생각이 없다.
도착하면 기념사진은 찍어야겠지? 완주 인증서는 어디서 받더라, 내일 성모승천일이라 공휴일이라던데 사람들이 많으려나 등의 생각만 들 뿐이다. 뭔가 특별하다고 할 만한 생각이나 감정은 전혀 없다. 오히려 담담하고 무던해졌달까.
지금 도미토리 밖에서는 삼삼오오 무리가 모여서 와인을 놓고 자축하고 있다. 나름의 마지막 밤이니 일종의 세레모니라 해야 할까. 그러나 나는 그저 평상시처럼 구석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음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마치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것처럼.  

2024.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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