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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Camino

내가 선택해서 걸어온 길이다

날라리 빵꾸인생 2024. 8. 16. 02:28

: 감정도, 몸도, 마음도 모두 내 책임이다, 나의 카미노이니까.

그러니까, 산티아고에 도착했는데, 마음이 더욱 싱숭생숭해지고 불만족스러워서 따지러 미사에 왔다. 미사 시간 한참 전에 들어왔는데 성당 안에는 이미 사람들로 또 가득하다. 일단 주저앉아 집전 머리만 노려보았다. “이 길을 걸으면 영광스러울 거라면서요? 이 길을 걸으면 뭔가 깨달음이 있을 거라면서요? 이 길에서 구원받을 거라면서요? 이도 아니라면 적어도 감동이라도 주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질문만 가득하다.
왜 나는 화가 난 걸까. 그렇다, 정확하게는 화가 났다고 해야 맞겠다. 불만족, 불안, 싱숭생숭, 신경질, 뾰루퉁, 심퉁.. 모두 뭔가 부족한 표현이다, 화가 났다고 해야 맞겠다. 왜 화가 난 걸까.
오래전부터 이 길을 꿈꿔왔고, 어렵사리 마련한 기회에, 그런만큼 끝까지 내 힘으로, 순례자의 정신으로 완주하고자 한달을 넘게 그렇게 애써서 여기에 도착했는데, 그런데 나는 그저 성당 앞에 선 사진 한 장과 인증서 한 장을 받았을 뿐이다. 기대했던 감정이나 상황이 아닌지라 더욱 허탈함에, 그 원망을 하늘에 대고 푸는 중이다.
그러나 이 길은 누구도 가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고민하고 결정하고 선택했을 뿐이다. 따라서 그 선택과 행동에 대한 책임 역시 내가 져야 할 뿐이다.
많은 이들이 카미노를 동경하고 원한다. 또한 다녀온 이들도 카미노에서의 경험을 매우 감동스럽고 행복하게 기억한다. 나 역시 걷는 동안 길이 주는 행복과 걷는 데서 비롯된 자기만족이 꽤나 컸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뿐이다. 그리고 그뿐인 것을 나는 지금 원망하는 것이다. 나의 기대가 배신당했다고 말이다.
카미노에서의 경험은 일반화될 수 없다. 각자의 카미노이다. 누군가가 얘기했듯 “너의 카미노와 나의 카미노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나의 카미노는 길에서 걷는 만족, 그뿐임을 인정해야겠다.

2024. 8. 15.
산티아고 도착한 건 몸뿐인가 보다. 아직 마음은 길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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