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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놓치는 것들

날라리 빵꾸인생 2019. 9. 25. 12:15

: 옮긴 글과 나의 정리

잠시 짬이 나 책꽂이의 아무 책이나 꺼내보는데, 또 피아노다. 한 번 읽었던 책인데 혹시 뭔가 다를까 싶어 펼쳤다. 

음악은 시각적인 감흥에 도취할수록 청각은 떨어져 제대로 즐기기 어려워진다. 피아노를 칠 때도 마찬가지이다. 악보를 읽고 음표를 3차원 공간인 건반에 입력시키는 데 모든 정신이 집중되어서, 진짜 중요한 것들 - 손가락 상태, 타건 감촉, 내 동작, 자세, 내가 치는 음들의 간격, 톤, 템포의 일관성 유지하기 - 을 모조리 놓친다. - 홍예나, <나는 오늘부터 피아노를 치기로 했다>

기억해 두어야 할 말이다. 특히나 아직도 머리며 손을 탓하며, 악보 옮기기에 온 정신을 쏟고 있는 나는 더욱 그렇다. 

그러고 보니 아직 초급자이지만 피아노 한 곡을 연주하는데 크게 세 단계로 나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악보를 읽는 단계, 이 때는 왼손, 오른손을 따로 치며 손가락 번호와 악보의 흐름을 제대로 익히는 작업이다. 사실 예전에는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아직 다 익히지도 않았는데 성급한 마음에 양손으로 옮겨가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각각의 손이 독립될 만큼 악보와 흐름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양손으로 치는 건 더딜 뿐만 아니라 불완전한 경우 다시 한 손을 연습하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그래서 요즘은 절대적으로 각 손의 익숙함을 지키며, 양손으로 하다가 계속 나아지지 않는 부분은 한 손으로 연습하는 일을 지속한다. 

그 다음은 양손으로 치되, 처음에는 천천히 악보를 보며 제대로 치는 것에 주의하며 치고, 이후에는 속도를 좀 올리고, 이후에는 악상에 유의하여 친다. 아마 수십 번은 반복해야 겨우 양손으로 치는 것에 익숙해지고, 알았다 싶었던 부분도 헤매기를 몇 번은 반복하게 된다. 죽어도 안 되는 부분은 따로 부분연습을 무한 반복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이때쯤 곡에 지루함을 느끼기도 한다. 아, 피아노는 너무 어려운 녀석이다, 젠장.. 그러면서. 뭔가 다른 곡도 흘끔거리면서. 그러나 다른 사람의 같은 곡 연주를 보게 된다면, 지루함 따위, 타협 따위는 쏙 사라진다. 그리고 절감하게 되는 거다, 나의 초보적 연주 수준을. ㅜㅜ

그렇게 좌절을 한 번 겪고서야 연습에 다시 몰입하고, (이 때쯤은 신기하게도 뭔가 안정을 느낀달까) 곡을 만들 생각을 하는 게다. 이 곡의 분위기, 나의 태도, 스타카토나 레가토의 정확성, 빠르기며, 소리의 톤 등을 생각하고서 곡을 친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페달 부분을 물어보고 깔끔한 페달을 위해 다시 속도를 늦춰가며 연습한다. 

이렇게 세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그 곡을 '알았다'는 정도가 된다. 풋, 세 페이지 곡을 만드는데 3~4개월, 아니 5~6개월은 꼬박 바치고서 겨우 알았다니, 이런 세월 낭비가 있을 수 없다. 과연 나에게 곡을 완성하는 날이 오긴 하려나.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내가 행복하다는 점이다. 몇 개월이 소요되는 지난하고, 어렵고 힘든 과정들이지만 시간은 지나고 어느 순간 어려워만 보이고, 벅차기만 했던 곡이 내가 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용한 가슴 벅참이 생겨난다. 그래서 또 새로운 곡을 도전하고 연습하고 어떻게 하면 나아질까 노력하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의 아라베스크, 한 손으로 치기도 벅찬 녀석도 언젠가는 알아지겠지.. 이 곡은 내게 너무 어려운 수준이라 정한수 떠놓고 기도라도 해야 할 판이지만, 시간을 투자하자. ^^) 

책 때문에 시작한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한 3년 후에는 내가 조금 더 성장해 있기를 바라며, 또한 피아노에 더 친숙해져 있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쳐온 시간들보다는 앞으로 치는 시간들이 내게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2019.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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