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 채우기보다는 집중하기 '안 되겠다' 싶어 수영을 일상에 끼워넣고 나니, 당연하게도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시간이 줄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수영이라도 하지 않으면 내 건강에 문제가 있을 성 싶을 만큼 움직임이 없는 직업이고, 게다가 지난 일이 년 동안 주말에만 수영을 했더니 허리가 삐그덕대 도저히 앉아 있기가 힘든 지점에 이르렀던 터이다. 그러자니 하루가 아주 밀도 있게 짜였다. 야근이 없는 평일을 기준으로 6시 퇴근 후 집에 와서 저녁 먹고 수영장으로 가서 8시 강습을 받고, 후다닥 씻고 나와 라온 연습실로 운전해서 이동하면 9시 반을 넘는다. 그때부터 11시 정도까지 피아노를 치다가 집에 와서 다음 날 도시락을 싸고 12시 넘어 겨우 스르르 잠이 든다. (이러한 날들이 연속 되니, 잠이 들기 ..
: 마음대로 치지 말 것! 요즘 들어 내가 고민하고 있는 건, 악보이다. 작곡을 하는 것도 아니고, 쉬운 초급 수준의 악보를 못 읽는 것도 아닌데(물론 읽는다는 건, 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악보가 고민이라니 누군가는 다소 의아해 할 수도 있겠다. 그래, 더 정확히 짚자면 악보를 보지 않는 내가 바로 문제다. 악보를 처음 받아들고 익숙해지기까지는 악보를 열심히 읽는다. 도미솔 계이름도 소리 내어 읊어가면서, 혹시 눈이 안 좋은 내가 잘못 볼까봐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악보를 잘 읽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 연습이 진행되어 곡에 익숙해지고 그 다음 자리에 손이 먼저 가 있는 시점이 되면, 자꾸 눈이 악보를 떠나 건반이나 손 위에 머문다. 그리고 마치 이미 다 안다는 듯이 후루룩 치다보면 뭔가 ..
: 팩트와 마주하기. (속쓰림 주의) 메트로놈을 처음 알게 된 건, 그 먼 옛날, 드럼을 배우면서부터이다. 밴드에서 박자를 좌우하는 절대 기준이 되는 드럼은, 드럼이 느려지거나 빨라지면 곡 전체가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만큼, 화려한 기교부림은 못한다 해도 밴드에 참여할 수 있지만, 기본 박자가 흔들린다면 밴드에서 쫓겨나게 마련이다. 그런 막중한 임무의 드럼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메트로놈은 스틱과 함께 항상 가방에 들어가 있던 녀석이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그때도 늘상 내 드럼 소리는 메트로놈과 어긋나기가 일쑤였고, 나는 메트로놈이 고장 난 것이라고 항변하다가 밴드를 그만두기도 했었다. --; 그 녀석을 다시 만났다. 운명이련가. 그렇다면 비운의 만남인 것은 분명하지 싶다. 그런데 요즘 들어 선생님은 곡을 ..
: 손목의, 어깨의, 목의, 몸의 힘 빼기~ 레슨 시간에 선생님은 가끔 건반을 치고 있는 내 손목 밑에 스윽 손을 넣어 갑작스레 내 손목을 위로 들어올리곤 한다. 어떤 때는 내 손목이 선생님 손등에 얹혀 가볍게 올라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선생님이 암만 힘써도 꿈쩍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들리는 선생님의 주문. "손에 힘 빼세요" 그럴 때면 깨닫는다. 내가 또 온 몸에, 손목에, 손가락에 힘을 주고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느 날은 건넌방에서 소리만 듣다가 달려와서는 손에 힘 들어갔다고 또 타박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알았지? 그냥 찍은 걸 거야' 생각했는데, 이제는 안다, 몸에 힘이 들어가면 소리부터 달라진다는 것을. 어디든 힘이 들어가면 소리에도 경직된 둔탁함이 파고들어 무겁게 무겁..
: 체르니에 대한 초보의 잡생각 벌써 20년도 훨씬 전의 일이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 수학 교재는 단연코 '수학의 정석'이었다. 정석은 모든 학생의 필수 교과서였고, 영어는 성문기본이 필수 교재였다. 거기에서 조금 더 잘하면 다른 교재로, 또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천재출판사의 '천문제 어쩌고'가 있었고 영어도 성문 기본이나 종합 외에 맨투맨이나 '리더스 어쩌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수학은 정석, 영어는 성문이 바이블이었던 시절에 공부했었다. 그런데 졸업하고서, 아니 그후로 한참 지나 사회생활을 할 때쯤 알았다. 정석이든 성문이든 그건 단지 수많은 교재 중 하나였을 뿐이다. 학교에서 배워야 했던 건 일상에 수학적 사고를 접목시키는 응용력과 계산력, 논리력이었고, 영어는 외국인과 소통할 수 있..
: 입술이 부르텄다 집에는 컴퓨터가 없다. 21세기, 글로벌과 IT를 뛰어넘어 시공간을 초월하는 4차 산업혁명이 뒤덮고 있는 이러한 시대에 컴퓨터가 없다니, 누군가 구석기 생활인이라고 구박하여도 사실 부정할 수가 없겠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뿌듯해 하는 이유는 컴을 버리고 사는 삶의 방식이, 돈이 없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음에 강요당한 것이라기보다는 내가 선택한 방식이기에 궁핍함이라기보다는홀가분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여튼, 집에 컴퓨터가 없다 보니, 요즘 들어 마음이 다급해지는 건 이 공간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피아노를 치면서 생겨나는 생각들을 담고, 어찌됐든 스스로가 문자적 인간이다 보니 문자로 풀어 놓아야만 정리되는 사고들도 이 공간에 잘 담아두자는 각오로 시작했는데, 집에는 컴이 ..
: 본인의 연주를 녹화해서 들어보기 어제 잠잘 때만 해도 정재형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는 이제 그만 연습해도 되지 않을까 고민했다. 연주하면서 듣기로 소리도 뭐 좀 괜찮은 것 같았고, 페달도 자연스럽게 밟았고 소리가 좋으니 노래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런 김에 틀리지 않고 연주하는 녹화를 막 완료한 소나티나에 대해서도 이제 그만 연습할까 하던 차였다. 그래서 새로운 곡은 또 무엇으로 한다지? 즐거운 고민으로 달콤한 잠을 잤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오늘 아침 출근길에 들어본 어제의 녹화 연주는 나를 좌절에 빠뜨렸다. ㅠㅠ 에고 이 부분은 왜 이렇게 음이 불안하지? 좀 더 가볍게 흘러가야 하는 부분인데, 왼손이 뭉툭해서 소리가 뭉개지네. 더 노래하듯이 감정이 들어갔어야 하는데... 아, 이 부분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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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한 부점 연습 내가 하농을 접하게 된 건, 세종에 내려와 피아노를 다시 시작해야겠다 마음을 먹었던 때이다. 그러나 당시는 '세베리아'(5년 전, 시베리아와 다름 없는 광활한 황토밭 세종시를 빗대어 우리끼리 붙인 별명)였던 세종이었기에 주변에 피아노 학원은 고사하고 식당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곳이었고, 독학이라도 해야겠다 마음먹고 이리저리 블로그를 찾아 읽을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조차 못 잡고, 그저 잠시 배웠던 기억을 더듬어 어드벤처와 체르니를 꺼내들고, 또 누군가 하농을 추천하기에 하농 책도 덥석 구입해 받아들었다. 모르던 책이었기에 기대에 부풀어 받아들었는데, 펼쳐 보니 그저 단순한 8분음표의 나열이고 막상 연습하자니 이게 맞는가 도통 모르겠어서 치다가 그만두..
: 파를 파#으로 바꿔치는 데 한 달이 걸렸다 "한 사람의 운명은 습관이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많은 자기계발서에서도 하나같이 강조하는 바는 습관이며, 되돌이켜 보면 뭐든 해야겠다 각오하고 마음 먹는 일도 결국은 습관을 바꾸는 일이었다. 그래서 습관 하나만 잘 길러도 건강하고 보람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결론이 바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습관 하나를 원하는 대로 바꾸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말이다. --;;; 피아노를 치면서 형성된 나의 습관은 자꾸 악보를 보지 않고 치는 것이다. 처음 악보를 받아들고 왼손, 오른손 각각의 자리를 익히고 리듬을 눌러볼 때는 악보를 정말 뚫어지게 본다. 그러면서 수차례 반복하고 그 부분을 대충 기억할 수 있는 즈음이 되면 그때부터는 악보보다는 건반을 보며 속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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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충주의 전문가, 날라리 빵꾸인 나로서는 봐주지 않는 선생님이 있어서 다행 한 곡을 부여잡고 한 달을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재미가 없어지는 시기가 있다. 처음에는 새로운 곡을 받아든 데 대한 흥분, 악보를 읽어가는 재미, 안 되는 부분을 부여잡고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며 이 악물고 해결하려는 의지 등등으로 한참 몰입하여 친다. 그런데 어느 정도 곡을 알아간다 싶을 때, 그리하여 그 곡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 때쯤 선생님은 어느 한 부분도 틀리지 않고 치라고 요청하고, 그러자면 또 그때부터 그 곡을 붙잡고 또 한 달은 연습해야 한다. 그때! 이제 이 곡은 그만치고 싶다는, 그래서 적당히 한두 군데에서 틀려도 어쨌든 칠 수 있으니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진다. 거기에 백건우도 미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