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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리 빵꾸인생 2024. 6. 6. 16:05

: 요즘 시간을 느끼는 방법 

내게는 그라마폰에서 묶어 판매하는 CD 40개짜리 피아노선이 있다. 원래는 그라마폰에서 발매되는 개개의 피아니스트 앨범인데, 그걸 한데 묶어 시리즈처럼 만든 작품집이라고 해야 할까. CD도 비싸고, 뭔가 엄선하여 고르는 것도 귀찮은 어느 때에 덜컥 사버린 박스형 앨범이다(피아노, 바이올린, 그리고 재즈가 있다). 요즘 나는 그걸 한 장씩 꺼내 CD 플레이어에 올리고, 그냥 틀어둔다. 대개 한 앨범당 짧으면 50분, 길게는 80분이다. 한 앨범이 끝나고 음악이 끊기면, "벌써 1시간이 지났군." 어깨를 펴고 일어나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다시 책상에 앉아 읽거나 쓰는 일로 돌아간다.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판이 끝나는 것으로 시간을 가늠한다고 해야 할까. 하루에 10개쯤 돌리는 걸 반복하자니, 이제는 앨범의 시작만 들어도 그 다음 곡을 알게 된달까. 

요즘의 나는 온전히 대학원생이다. 학교에 지원한 목적과 다르게, 책상에 파묻혀 너무나 열심히 읽고 쓰기를 반복하고 있다. 내 계획은 이게 아닌데 말이다.

애초에 나는 대학원에 적을 두고, "놀겠다"는 의지였다. 뭐, 성적이야 잘 받아서 어디 내세울 것도 아니고, 그저 수료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고, 그렇다면 수업 받으러 서울 오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남은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하여 쓰겠다는 생각.  그러니까 종일 피아노를 치고, 수영도 열심히 다니고, 발레에 좀 더 투자하고, 그리고 평일에는 싼 뱅기값으로 제주도나 다니자는 숨겨진 목표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다니던 수영 강습도 접고, 발레도 급기야 등록하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으며, 스트레칭이나 달리기는커녕 이제는 도서관 가는 시간도 아까워서 집 책상에 처박혀 읽고 쓰고 있는 중이다. 나, 대학원에 왜 간 걸까. 

이런 차에 피아노까지 손을 놓는다면, 차라리 회사를 다니는 것만 못한 꼴인지라, 피아노만은 지키자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7시에 학원으로 가고 있다. 세수를 했든 안 했든, 어제 새벽에 도착했든 안 했든, 몸이 굳어 어깨에 바윗덩어리가 있든 없든 일단은 학원에 가고 있다. 피곤함에 피아노 앞에 앉아서 고개 떨구고 졸더라도, 생각은 딴 데 있어 자꾸 틀리고 내가 어디 치는지도 놓치더라도, 이런저런 연락이며 공지를 확인하느라 피아노 앞에서 sns만 확인하고 오더라도, 그럼에도 내 하루의 시작은 피아노이다. 그래야 저녁에 졸다가 이불 속에 들어가더라도 후회하지는 않으니까. 

어쩌다가 이리 되었을까나. 

모두가 나를 걱정할 때에도 대학원 생활을 얕봤고, 
회사를 다니지 않으니 시간이 무한정이라 생각했고, 
읽고 생각하고 쓸게 많은데, 생각보다 나의 밑천은 빈약했고, 
화, 수, 토 일주일에 3일을 서울 다니는 생활이 다소 퍽퍽했다. 
게다가 시간을 들일수록 더 좋은 보고서가 나오니, 남는 시간이 없다, 아니 노는 데 시간을 할애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오늘은 현충일, 소위 빨간 날이다. 회사에 다닐 때만 해도 아기다리고기다리, 무엇을 할까 고민하며 일정을 정하고, 표를 예약하고 어쨋든 나섰을 터인데, 오늘도 피아노 연습을 다녀오고 오자마자 zoom 조모임이 있었고, 끝나고는 보고서안을 수정하고 점심을 먹고는 토요일에 발표할 보고서를 다듬는 중이다. 내일 역시 살펴봐야 할 텀페이퍼가 있고, 과연 끝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아... 억울해서, 티스토리를 열었는데,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 모두가 내가 자초한 일이라, 그저 조용히.. 한탄하는 중이다. ㅜㅜ

햇살은 눈 부시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는 명랑하며, 
창문을 넘나드는 바람은 부드럽고, 
배경음악인 피아노는 웅장하다.
너무도 따사로운 하루이다. 

다시 텍스트 사이로 사라져 버릴 시간이지만, 적어도 이 공간에 남기는 건 남겠지. 
휴우, 오늘은 2024년의 현충일이다. 

2024.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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