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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의 느낌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 폰페라다에서 나오는데, 템플기사단 성을 마주하고 후회했다. 어제 성을 좀 둘러봤어야 했는데, 그 정보를 모르고 있었다. 물론 피곤해서 쓰러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 새벽에 좀 서성이다 왔다. - 폰페라다부터 시작하는 순례자도 있는가보다. 사실 어디서부터 시작하는가가 뭐 그리 중요한가, 그저 길 위에 같이 서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지. 응원해주었다. - 이제 옥수수는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오늘은 하루종일 포도밭 사이를 걸었다. 와인밭 한가운데서 쉬는 것도 좋았다. 오늘에서야 카미노 이후 처음으로 자유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되었다. 뭔가 나는 자유하고 있다. - 아직도 끼니 해결은 내게 숙제다. 오늘도 마트에서 샐러드를 먹겠다며 집어들고, 적절한 드레싱으로 야채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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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양도시, 별장지 같은 몰리나세카. 참 예뻤다. - 멀쩡하게 아침 먹고 인사하고 나서려는데 셀린이 안아주어서 또 눈물 흘릴 뻔. 꾹 참고 나왔다. 밖은 새벽이라 많이 추웠다. - 철의 십자가는 그다지 멋있지 않았다. 십자가보다는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멋있었다. - 와 정말, 내리막 작렬이다. 이렇게나 올라왔던가 싶을 정도로 계속해서, 하루종일 내리막이다. 그러나 뷰는 어찌나 예쁘던지 자꾸 발이 돌에 채여도 눈은 앞산과 옆산과 구름을 향해 있었다. - 왜 이 구간을 아름답다고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지 않았겠지만, 나는 이제서야 알았다. 피레네 못지 않게 아름다웠다. - 다만, 정말 험난한 구간이었다. 어떤 분이 생장에 버금갈 만큼 힘들었다고 했는데, 이해가 된다. 엉금엉금 겨우겨우 스틱으로..
: 나는야, 카미노의 거북이 길을 걷자면, 하나둘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간다. “부엔카미노~” 지나가는 그들이, 또는 길을 비켜주는 내가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다. 지나가다 보면 앞서간 그들이 마을 Bar에서 쉬고 있다. 그러면 쉬고 있는 그들이, 지나가는 내가 또 인사를 한다. “부엔 카미노~” 다시 한참을 걷다보면 아침의 그 사람들이 또 나를 지나쳐간다. “부엔 카미노~” 그리고 다시 내가 그들을 지나칠때면 서로 마주보고 웃는다, 이제 우리는 인사 따위는 필요없는친구가 되었다. 2024. .8. 6 하루에도 몇 번 스쳐 지나가는 우리는 카미노의 토끼와 거북이다. 단지, 우리의 동화에서는 이기고 지는 게 없다는 것뿐. 그저 우리 스스로의 길이 있을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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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 난이도보다는 인터넷이 안 터져 답답했던 날 - 아스토르가 나오는 길이 아쉬웠다. 정말 예뻤던 도시, 성당의 대리석은 새벽에도 아름다웠다. - 조금씩 오르막이다, 그래도 날이 좋아서 걷기 좋았다. 어제 사둔 빵을 먹었다. 근데 바케트는 그닥, 차라리 이전에 사둔 빵이 훨씬 맛있었다. - 마리아와 헤어졌다. 그래도 길 위에서 언제 다시 만나겠지? - 폰세바돈의 매운 맛은 한라산 느낌이다. 고산에 급경이고, 옆의 식생들도 모두 키가 작고, 바람은 다소 매섭다. 모두 헉헉거리며 올랐다. - 선착순인 공립알베르게, 도달하니 딱 내가 마지막이었다. 다들 앉아서 나를 쳐다보는데, 다소 부끄럽기도 했다. - 셀린의 소모임. 다소 경계하며 앉아 있었는데, 적어도 그 자리에 온 사람들은 열린 마음이었는가 싶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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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치기보다는 머물러야 느낄 수 있다. - 산중이라 그런지 새벽 6시여도 너무나 깜깜했다. 가다서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드디어 누군가가 뒤에 따라왔을 때에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새벽 출발은 동행이 있고없음에 따라 느낌이 매우 다르다. 별은 오늘도 총총했다. - 어제부터 시작된 무릎통증이 심상치 않다. 아끼는 동전 파스를 붙였다. 이제 2개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래도 다음 마을에서 오늘은 접어야겠다. - Astorga는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에서부터 아름다웠다. 와, 오늘 쉬어가는 마을이 아스토르가여서 다행이었다. 마음도 홀가분했다. - 일단 가방을 알베르게에 맡기고 걸었다. 가방 없이 걷는 가벼움이란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가우디 건물을 보고 대성당을 보고 근처 호텔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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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을 건네드리려고 길목에서 기다리는 중인데 안 오신다. 벌써 지나가셨으면 어쩌지. 그러니까 어디서 처음 만났더라.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그분을 인식하게 된 건 카스트로헤리츠이다. 나보다 먼저 도착해 한쪽 구석에서 알베르게 오픈을 기다리던 조그만 할머니. 그리고 옆에 맨 가방에서 다 해진 비닐봉투를 꺼내 요금을 지불하던 가냘픈 손 때문에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 분은 스페인어도, 영어도 잘 못하신다. 그저 간단한 대답과 단어 수준이다. 뭔가 설명이 필요한 경우는 불어로 대답을 해서 알베르게 봉사자가 불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도 했다. 언어에 대한 장벽 때문인가 할머니는 그저 구석에서 조용하게, 옆에 맨 색에서 조무락조무락 뭔가를 살펴보거나 비스킷을 드시거나 하시는 게 다였다. 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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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씻고, 빨래하고, 쓰고, 잘 수 있으면 된다. 그러고보니 먹는 건 또 뒷전이다, 내게. 아…. 지금 이 곳은 진짜 시설이 낙후하다. 난방은 안 된다고 당당히 적혀 있다. 게다가 샤워실의 잠금장치도 고장 나서 누구든 문을 열 수 있고, 방문은 이미 제 자리에서 벗어나 자꾸 덜거덕거린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한다고 이미 하루 일정보다 5킬로를 더 걸어서 찜해 둔 알베르게에 갔는데 8월 5일까지 휴가라 하고, 비싸지만 근처에 있는 또 다른 알베르게는 이미 다 찼단다. 다시 되돌아가려는데, 풀부킹 알베르게 주인장이 2킬로 넘어서 알베르게가 있다는 말에 더운 한낮에 이미 지칠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온 곳이 여기다. 알베르게가 낙후하다고 더 갈 수도 없고, 되돌아갈 수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투숙객이 나 혼자..
: 그러니까, 그러니까, 살포시 안아주는 그녀가 따뜻해서, 고마워서 그런거라고 하자. 그러니 더없이 주책에 또 주책인 거라고 하자. 어제 레온에서 더 많이 걸어왔으니, 오늘 가야 할 길이 그다지 많지 않기도 했고, 알베르게 봉사자 할머니가 아침을 6시에 준비하니 꼭 먹고 가라고 손을 잡고 당부하기도 해서 6시에 맞춰 준비를 하고 식당에 갔다. 어머나, 대개의 형식적인 아침이 아니라 계란도 구워있고, 우유와 오렌지 쥬스는 물론 따뜻한 커피도 따라주신다. 빵도 데워주고, 꼴랑 3명인 순례자가 혹시 부족한 게 있는지 살펴보고 웃으면서 가져다 주셨다. 그런 배려 또한 고마운지라, 나는 밥을 먹으면서 파파고로 고맙다는 인사를 스페인어로 번역했다. 이따 나가면서 보여드려야지 했다. 순례자들이 다 먹고 떠나는 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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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는 중, 거리도 33킬로를 넘어선다. 아, 강수미는 후회할 만한 선택만 한다. 빌어먹을. ㅠㅠ - 또 만날 수 있을까, 이 다정하고 따뜻한 알베르게와 자원봉사자들을.. 한참을 되새기면서 울컥울컥 하며 걸었다. 나도 참 주택이다. - 레온은 참 좋은데, 레온 앞뒤 구간은 고속도로 옆을 걸어야 해서 좀 싫다. 쌩쌩 달리는 차가 바로 옆이다. - 두 갈래로 나뉘는 길 중에서 고속도로 옆이 아니라 좀 돌아가더라도 시골길로 가자고 했더랬는데, 표시를 잘못 찾아서 도로 옆길을 주구장창 걸었다, 우띠. - 꺄악, 프랑스 할머니를 만났다. 내 얼굴에 가득한 미소를 보셨는지 할머니도 기다려주시며 아는 척을 한다. 영어를 못하셔서 소통은 안 되었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아시는가 보다. 가방 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