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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에서 생긴 문제는 길로 해결해야 하는가 산티아고를 등지고 걷는 중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너무 지쳐서 더는 안 걷겠다 생각했는데, 산티아고에서 휴식을 취하리라고 마음먹었는데, 도무지 마음이 시끄러워서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단, 지치면 버스를 타자며 나섰는데, 새벽의 그 아스라함과 고요함이 또 너무 좋았다. 길에서 생긴 문제는 길에서 해결해야 할까.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한결 가볍다. 이제는 무얼 바라거나 이루겠다면 걷는 게 아니다. 순전히 즐기겠다며 걷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발길이 더욱 느려졌고, 시선은 여기저기 머무는 곳이 많다. 언제라도 버스를 타거나 주저앉아도 된다는 생각에 몸의 피곤함도 덜하다. 아무래도 그동안 내가 즐겁고 행복했던 건 길과 길 위의 사람들 때문이었음을 다시 한 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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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여행자다, 여행으로 걷는 중이다. 고생하지 않고 즐길테다, 룰루 - 알베르게 침대와 사람들의 매너가 꽝이어서 잠을 잘 못 잤다. 일단 나와서 새벽길을 걸었다. - 새벽 동 트는 방향에 대성당이 보였다. 이제까지와는 걷는 방향이 다르다. 지금부터는 산티아고를 등지고 걷는다. - 길보다는 경로에 있던 몇 곳이 예뻤다. 그중 폰테 마세이라는 정말 머물고 싶었다. 잠시 바라보다 왔다. - 보통은 네그레이라에서 묵는데, 20킬로밖에 안 되기도 해서 9킬로 정도 더 걸었다. 네그레이라에서 산 복숭아와 사과가 맛있었다. - 앞서 가는 친구의 배낭에 호랑이 인형이 있다. 아마도 예전에 본 듯한 호랑이 인형. 그게 본인을 알리는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 만약 내가 트레이드마크를 선정한다면, 나는 거북이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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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도, 몸도, 마음도 모두 내 책임이다, 나의 카미노이니까. 그러니까, 산티아고에 도착했는데, 마음이 더욱 싱숭생숭해지고 불만족스러워서 따지러 미사에 왔다. 미사 시간 한참 전에 들어왔는데 성당 안에는 이미 사람들로 또 가득하다. 일단 주저앉아 집전 머리만 노려보았다. “이 길을 걸으면 영광스러울 거라면서요? 이 길을 걸으면 뭔가 깨달음이 있을 거라면서요? 이 길에서 구원받을 거라면서요? 이도 아니라면 적어도 감동이라도 주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질문만 가득하다. 왜 나는 화가 난 걸까. 그렇다, 정확하게는 화가 났다고 해야 맞겠다. 불만족, 불안, 싱숭생숭, 신경질, 뾰루퉁, 심퉁.. 모두 뭔가 부족한 표현이다, 화가 났다고 해야 맞겠다. 왜 화가 난 걸까. 오래전부터 이 길을 꿈꿔왔고, 어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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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지러 미사에 왔다, 내 기분이 왜 이러냐고. - 유난히 일찍 나섰다. 나도 긴장한 걸까. 피터는 밤새 잠을 못잤다고 하고, 정말이지 퀭했다. 다들 들뜬 건지, 긴장한 건지 모르겠다. - 새벽에 산티아고에 들어오니 모든 게 고요하다. 심지어 사진에서는 인파로 가득하던 광장에도 사람이 몇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나 실망스러운건가. ”엥? 이게 다야?”는 질문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원래는 “우왓, 나 도착했어!! 내가 해냈다고, 멋있어, 감동이야 산티아고~!!” 난리법석이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자꾸 마음이, 생각이, 몸이 대성당을 노려보고만 있다. 이게 뭐야, 그저 이 성당 하나일뿐인데 내가 그렇게 고생한 것인가. 원망스러웠다. - 다만, 헤어졌던 형우 씨를 만났다. 반가웠다. -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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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 생각이 없다 오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차분하면서도 들떠 있다. 어떤 이들은 오늘 산티아고에 입성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아직 10이나 20킬로미터를 남겨두고 있기도 하다. 어쨌든 오늘 길에 있는 사람들은 오늘이나 내일이면 산티아고에 들어간다. 나는 오늘 28킬로 정도를 걷고, 10킬로는 남겨두었다. 대략 일정이 비슷했던 다른 친구들은 내처 40킬로를 걸어 산티아고에 들어간다고 한다. 다들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그래, 너무도 기뻐할 일이다. 기나긴 길들과 날들을 단지 산티아고를 목표로 견뎌왔으니 말이다.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그런데 어째서 10킬로를 남긴 지금,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이제 내일 새벽 6시에 출발해 3시간 정도면 산티아고에 들어가게 되고, 나름 지나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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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작 10킬로 남았는데 더 걸을까 말까, 내처 산티아고로 갈까 말까. -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는 중이다. 그런데 길이 너무 예쁘다. 아무래도 어제 비가 온 후라 그런지 나무향도 진하고, 길도 촉촉하여 매우 걷기 좋았다. 사리아에서부터 지금까지의 길은 모두 마음에 들었다. 다만, 사람들만 좀 덜했으면 하는 마음이랄까. - 대만 친구와 그새 정이 들었는가 보다. 한동안 같이 걸었고, 늘 수줍어하던 대만 친구도 오늘은 말이 많다. - 라바코야 오기 전 Bar 음식이 맛있었나 보다. 보기에도 맛있어 보였다. 다음에 온다면 꼭 방문하고 싶은데, 다음이라는 기회가 내게 있을까? - 숙소는 괜찮아보였는데, 시트를 안 준다. 다소 불안하다. - 일단 라면을 끓여먹고, 좀 쉬고, 내일 마실 물을 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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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걷고 얼마 되지 않아 비가 내렸다. 준비는 했지만 그래도 축축하고 춥고 달갑지는 않다. - 사람들이 어디서 그렇게 쏟아져 나오는지, 길에 한가득이었다. 게다가 다들 소풍 나온 것마냥 신이 나서 떠들어대는데, 사람들이 아니라 소음을 피하고 싶어서 쉬지 않고 걸었다. -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간다. 아, 그리워라 나의 학생 시절들.. - 20킬로쯤 쉬지 않고 걸었더니 탈진이다. 마침 공원이 있어 거기에 눌러 앉아 비스킷을 먹었다. 그런데 또 비가 나린다. 이런. - 아르주아에 도착했다. 꽤 큰 도시이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부려놓고 일단 과일을 사러 나섰다. 복숭아와 토마토가 먹고 싶었다. 맛있었다. - 빨래를 해서 널었는데, 또 비가 흩날린다. 아, 비가 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 ㅠㅠ -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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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이 없어야 하는데, 생각이 더 많아지고 있다. 산티아고를 향하는 길목에 있는 사리아부터 100킬로미터를 걸어도 카미노 인증서를 받을 수 있기에, 사리아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또한 100미터는 빠르면 3일, 늦어도 5일이면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 있어서 길을 대하는 태도나 차림, 방식 등이 매우 다양하다. 한 예로 반려견과 동행하는 이들이 벌써 내가 본 것만도 5쌍이 넘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들(게다가 가족의 가방도 똑같다), 친구들과 깔깔 수다가 더 재밌어 보이는 여학생들, 백패킹 배낭이기보다는 패션배낭에 가까운 배낭과 차림으로 걷는 젊은이들도 꽤 많다. 그러니까 생장이나 길의 초반부에 시작하는 사람들은 30일을 걸쳐 걸어야 하는 까닭에 장비며, 마음가짐이며 단단히 무장한 반면, ..
: 마음을 잘 추스리고, 다시 여정을 가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심드렁 걷는 중이었는데, 느닷없이 여성 한 분이 나를 붙잡고 거울을 들고 있어달라 하셨다. 엉겁결에 거울을 들고 왜 그러시나 하고 보는데, 내 쪽에서는 안 보이던 반대쪽 얼굴을 거울에 들이대는데 피가 주루룩 흐르고 땅에 미끄러지셨는지 얼굴에 생채기가 가득하다. 게다가 이마 쪽에는 혹이라 하기에는 엄청나게 큰 혹이 생겼고, 찢어졌는지 피가 계속 흐르고 있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이냐며, 그제서야 나 역시 바짝 긴장해서 살펴보는데, 그때서야 할머니인 걸 알아챘고, 가방이며 옷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고, 거울을 든 내 손에도 피가 묻었다. 할머니는 밴드를 들고 해결해 보려 하시는데, 밴드로는 택도 없는 일이다. 일단 길가에 앉히고 할머니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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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무척이나 걷기 싫었다. - 새벽에도 기운이 별로 없다. 어제 저녁도 잘 먹었는데, 요즘 잠을 못자서 그런지 기운이 없다. - 그래서 걷는 것도 신이 나지 않는다. - 느닷없이 사고를 당한 할머니를 도와드리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심드렁하던 마음이 바짝 긴장되었다. 아, 사고는 순식간이다. 할머니의 당황스러움이 너무도 이해되고 안쓰럽다. - 구름도 많고 가끔 비도 흩날려 걷기에는 좋으나, 어째 걷고 싶지가 않았다고 해야 할까. - 세바스찬이랑 한참 얘기하며 걸었다. 늘 빨리 걷던 세바스찬이 어쩐 일로 오늘은 나와 보조를 맞추어 걷는다. 영어를 더 잘하고 싶단다. 지금도 충분하지만,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해주었다. - 거리도 짧아 일찍 끝났는데, 알베르게는 1시에 문을 열어서 카페에 죽치고 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