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대 만빵~ 일요일 5시를 넘겨, 여기저기에 엄마 반찬을 나눠주고 연습실에 들어서는데, 허연 머리에 색소폰 가방(아마도??!!)을 얼메지고 연습실을 나오시는 분이 "들어가니?" 나를 향해 미소 지으시며 문을 열어주신다. (내가 마흔 중반을 한참 넘었는데, 어르신께 "들어가니?" 친근한 반말톤 대화를 들어본 건 또 처음이다, 내가 어렸보였나. --;) 당황해 슬쩍 눈인사만 하고 재빨리 문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 다음에 연습실에 들어와 드는 생각, "누구시지?" 한참 연습 중, 연습실에는 대개는 나의 연습 소리와 청년의 아직 고음이 불안한 노랫소리와 전공생의 소나타 소리만 가득할진데, 어디선가 저 뒤 쪽에서 체르니 100의 선율이 띄엄띄엄 들린다, 어랏, 생태계의 변화닷! 참 반가운 일이다. 아직 소리는..
: 아듀, 2021. 세월은 훌러덩훌러덩 흘러 벌써 2021년의 마지막 달이고, 오늘부로 2021년은 딱 17일 남았다. 시간을 세는 건 의미없고, 심지어 날과 달이 가고 해가 가는 것도 그저 기억하기 쉬운 분류일 뿐 그게 인생을 좌우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매년 연말이면 마음이 다소 싱숭생숭해지고, 수첩도 정리하게 되고, 한 해를 돌아보게 되는 건 또 어찌할 수 없나 보다. 이번 달은 그동안 피아노 연습을 좀 게을리한 데 대한 반성과 아무래도 3곡은 외워 치자는 스스로의 목표를 채우려고 그렇게 쫓아다니던 수영을 쉬고 있고, 발레도 딱 그 시간만 충실하는 것으로 타협하고 있고, 무슨 일이 있든지 매일 피아노 앞에 앉는다는 야심찬 목표를 책상 앞에 떡하니 붙여놓고 매일 다짐하는 중이지만, 한..
: 느린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만두는 것을 두려워하라. 가을의 청명한 하늘과 짙붉게 불타는 산이 나를 부르니, 아니 달려갈 수가 없고,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 수첩을 채워가는 저녁 일정에 반가움 반, 걱정 반. 점점 빠져들게 하는 발레의 매력, 2개의 학원을 등록하고 나니 담달 피아노 레슨비가 당장 걱정. 여차저차 연습을 못하니 레슨 날이 다가오면 레슨을 취소할 핑계를 먼저 찾아 두리번두리번. 급기야 11월에는 두 차례의 레슨을 건너뛰고, 그러다보니 연습도 건너뛰고 자꾸 '연습을 못했다'는 투덜댐만 수첩에 가득하다. 문득, 이러다 그만두지는 않을까 걱정이 든다. 인간의 변덕스러움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그저 평범한 인간으로서, 호기심과 재미는 정말 호떡 뒤집는 것보다 쉽게 사람맘을 변하게 한다는 걸 ..
: 이자는 필요없다, 투자한 시간만큼 남아다오. 그럴 수 있다면, 피아노 연습시간을 통장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그 시간이 고스란히 실력으로, 연주로, 소리로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어찌된 일인지 연습 시간은 그래도 쌓여 가는데, 남아 있는 잔고를 보면 늘 바닥이다, 피아노 앞에서 좀 쳐볼라치면 늘 빈 통장 잔고를 보는 기분이다. 다시 기운 내어 읏샤읏샤 연습시간을 쌓지만, 또 한두 주일 지나 꺼내보면 여전히 바닥이다. 내 피아노 잔고는 언제쯤 두둑해지려나. 2021. 10. 20.
: 예민한 피아노, 그보다 더 예민한 나. 레슨 받는 피아노는 스타인웨이 그랜드다. 처음에는 그 타건감과 소리가 너무 신기해서 레슨 갈 때마다 둥둥둥 쳐보곤 했고, 뭔가 반짝이는 피아노 자태에 레슨방에 들어서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그런데 스타인웨이에서 치다 보면 가끔 소리가 먹히거나 삑사리가 나거나 손가락이 튕겨나가는 현상이 발생했다. 연습실이나 집에서 치던 업라이트와는 다른 느낌이었달까. (업라이트보다 스타인웨이 건반이 훨 가벼웠다) 뭐, 아마도 익숙하지 않은 탓이겠거니, 익숙해지면 해결되겠거니 했더란다. 그런데 벌써 1년이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도 그 현상은 여전했다. ㅜㅜ 급기야, 어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은 제외하고는 나름 곡을 만들었다 생각했는데, 레슨에서 또 소리가 먹히는 현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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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 중에서 어느 구간은 도저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난코스가 있다. 아마도 곡이 수준별로 나뉘는 것도 그런 코스가 얼마나 되는지 여부, 또한 몇 가지의 기술 또는 소리 만들기를 얼마나 부드럽게 구현해낼 수 있느냐의 여부로 나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수준에 어렵다고는 하는데 막상 칠 수 있을 것 같은 곡들도 그 난코스에 이르면 대개는 좌절하면서 '아, 이 곡은 어려운 거였구나.'를 깨닫게 된다고 해야 할까. 차 쌤의 '바카롤레'도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다며(물론, 연습이 완전대박 필요하다) 스리슬쩍 넘어오고, 조가 바뀌는 부분도 박자가 바뀌는 부분도 스리슬쩍 넘어가는데 드디어 43마디에서 이상하다며 막혔다. 사실 이 구간 앞뒤로는 선생님의 설명 없이 구현하기가 좀 어려웠다. 곡의 전반부는 악보를 ..
: 말 그대로, 망했다. 요즘 다소 정신없기는 하다. 게다가 내 생에 처음으로 한약까지 먹고 있으니, 뭐 체력으로도 말 다했다 싶으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피아노 연습까지 이렇게 제끼게 될 줄을 몰랐으나, 어찌어찌하고 또 어찌어찌하다보니 한달 내내 그 자리, 그 페이지다. 아, 이게 바로 피아노 권태기인가. 체력은 안 되는데 욕심이 많아서, 좀처러 시간이 나지 않는다. 어차피 인간관계는 전혀 관심으니 고려대상 밖이고,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더욱이 그러하다. 그런데 수영도, 발레도 자꾸 하나하나 욕심을 내니 밤이면 밤마다 지쳐 쓰러져 자기 일쑤이고, 피아노는 맘으로만 '가야 하는데... '를 되뇌이다 그냥 잠이 든다. 급기야 지금은 한 달 내내 체르니도, 하농도, 바카롤레도 계속 같은 페이지이다. 즐겁..
: 어느 한 날의 피아노 연습. 이것저것 쳐보기, 어머낫, 이런 재미가. 재미가 쏠쏠하다. 연일 폭염주간이다. 주말에 이제는 광주 가는 일이 다소 줄어들어서 시간이 좀 생긴다. 애초에 주말은 몽땅 광주 가는 것으로 공표를 해놓은지라 다들 내가 여기 세종에 없으려니 생각해서이기도 하고 또한 너무 더운 나머지 현관 밖으로 발가락 하나 내딛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요일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그러다보니 딱히 할일이 피아노 칠 일밖에 없다. 물론 그 방은 에어컨 바람이 잘 안드는지라 선풍기로 버틸 수 있을 때까지이기는 하다. 그래서 오전과 점심 무렵의 세네 시간 앉아있다가 일어나 점심 먹고 가방 들고 담요 들고 학원으로 간다. 여기서 담요란, 학원이 그 좁은 연습실 공간에 냉기가 가득 차도 다른 방..
: 시간과 경험치가 쌓이면 무적이다. 이제 나도 더 이상 피아노 비기너는 아닌가 보다. 뭐 연차를 따진다거나 체르니를 따진다거나, 그건 사실 의미없음이고. 단지 지난 날,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고서 얼마 되지 않았던 그런 날, 마냥 두렵기만 했던 일이 지금은 전혀 아무렇지 않게, 익숙하게 해내고 있는 걸 느낄 때면, 아, 그동안 내가 조금은 달라졌구나, 그래도 조금은 실력이 쌓였는가 보다 생각하곤 한다. 예를 들면 손가락에 힘을 주어 일부러 누르지 않아도 소리가 울림이 있다거나, 왼손 오른손 분박해서 소리를 끼워넣을 때도 박자가 틀어지지 않는다거나, 트릴 때문에 망설이지 않는다거나, 옥타브 자리를 찾아 방황하지 않는다거나... 그중 악보에 손가락 번호를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 신박한 경험 아날로그 인간인지라 수첩을 쓴다. 누군가는 블로그에 정리한대고, 누군가는 탭에 스케줄러를 만들어 공유한다는데 나는 아직도 약속이 생기면 수첩에 적고, 누군가의 계좌번호도 수첩에 일렬로 줄 세우며, 가끔 전화번호도 색색의 칼라펜으로 정리해놓곤 한다. 그러다 가끔 그때는 뭐했더라 싶으면 낡은 수첩 박스를 열어 케케한 종이냄새를 한 풀 흘려보내고 당시 수첩을 꺼내 휘리릭 뒤져보곤 한다. 그럴 때면 가끔 누군가에게서 받았던 엽서나 쪽지도 떨어지고, 입장권도 떨어지고, 글씨 다 날라간 영수증 종이도 떨어지고... 아, 소중한 나의 시간들이 여기 모두 모여 있는 게 너무 좋다. 너무 아날로그이지만 어쩌랴, 그게 나의 정서인걸. ^^ '아날로그'라는 단어로 시작하니 피아노가 아닌 내 추억몰이를 꺼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