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안감, 불만족, 뾰루퉁에 이어... 우두망찰 중이다. 인명구조 훈련받는다고 이번 달은 레슨을 안 받는다. 목금토일 연짱 4~8시간 훈련이니 안 그래도 미미한 체력, 분명 시체 될 터, 피아노 근처에도 가지 못할 게 빤해서이다. 헌데, 월화수....에 시간이 남는다. 남아도 한참 남는다. 어차피 연습도 못할바, 앗싸라뵹, 도 읽고, 청소도 하고, 발레 유튜브도 보고, 일기도 정리하고, 구석에 보이는 먼지도 닦는데, 어랏, 시간이 남는다. 시간이 남아 서성이고, 시간이 남아 노트에 "좋긴 한데.."를 쓰고, 시간이 남아 엄마에게 안부 전화도 하고, 시간이 남아 간만에 화분들이랑 대화도 하는데, 왜 마음이 싸늘한지.. 뭔가 불만족 투성이다. 그러다가 은근슬쩍 작은방으로 건너가 덮인 피아노 뚜껑을 쓰다듬는..
: 나의 태도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는 집요함과 고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여차저차한 시기에 한 달 동안 집 근처 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그 학원은 성인이 아닌 아이들 대상의 학원이었고, 나로서는 야간에 연습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등록하고 레슨은 일주일에 두 번인가(가물가물?), 한 번 레슨에 30분 정도로 정했었더랬다. 그런데 이 분이 임신 중이었어서 결국 한 달 만에 종료하고, 나 역시 그게 기꺼웠었는데, 그게 레슨 중 선생님의 집요함과 양보 없는 요구에 다소 버겁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때 당시 왈츠의 변조 첫 부분이 정말이지 계속해서 틀리는데, 어떤 때는 무사히 넘어가다가고 어떤 때는 틀리고, 아니 대부분이 틀려서, 그냥 안 되는구나, 포기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가고 싶은데,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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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우매우매우*** 잘 치고 싶으다, 이런. 연습실 떠나기가 이렇게 아쉬울 줄이야. 알다시피 바가텔을 선택한 이유는 베토벤을 쳐보자 하시는 선생님의 권유에, 호흡 길고 콩나물이 무지막지한 소나타를 시작하기에는 가슴에 묵직한 돌 하나 얹는 것 같아서, 쉬어가자며 들고 간 것이고, 눈으로 보기에도 귀로 듣기에도 조금은 가벼워 보인달까, 심지어 이름조차 가벼운 소품이라는 의미의 "Bagatelle"이라서 정말 편한 마음으로 시작한 터였다. (영어사전에는 '하찮은 것'이라는 의미도 있다. 어머낫!) 여타의 피아노 카페나 유튜브를 보아도 바가텔을 연주하는 취미생들은 별로 없어서 곡에 대한 기대보다는 그저 다음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한 숨 고르겠다는 얄팍한 심산이었달까. 어라, 그런데 이 Bagatelle이 나를..
: 체르니로 살펴본, 나의 레슨 쌤 경험기 곡을 연습하거나 레슨하면서 “자, 이번 곡은 이제 다 익혔으니, 이만 다음 곡으로 넘어가볼까”며 페이지를 넘긴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게 체르니이든 곡이든, 클래식이든 뉴에이지이든 심지어 가요든 말이다. 그나마 작품곡들은 “지금은 아쉽지만, 언젠가 또 다시 연습하자”는 마음으로 (예를 들어 바흐의 인터메쪼는 가을용 곡이니, 이번 가을에 다시 완성을 기해보자며) 손을 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선생님과 같이 레슨을 하는 체르니는 대체 언제 다음 곡으로 넘어가야 할지 감이 전혀 없다. 엊그제 체르니 4번은 악보를 본 지 불과 한 주 만에 넘어가자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전에 체르니 3번은 1시간씩 주구장창 연습해도 한 달을 넘게 붙잡고 있었다. (아 ..
: 나는 나를 믿는가. 다음 곡을 고르는 일은 매번 신중해진다. 게다가 나처럼 초급도 중급도 아닌 어정쩡한 언저리에 걸쳐 있다면 더욱, 곡에 대한 고려사항이 많아진다. 지난 번에 바흐의 인터메쪼를 잡는 동안 어려운 구간들을 하나하나 붙들고 있었음에도 결국 3개월이 지나 미완성인 채로, 올 가을에 다시 잡자며 다음 곡으로 넘어갔고, 차이콥의 뱃노래는 심난한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정말 간신히 넘긴 터인지라, 선생님이 베토벤의 소나타를 권하셨을 때에는 그 길이와 빠르기에 먼저 주눅 들어, 차마 음악을 들어볼 생각도 못하겠더라 말이다. 그렇다고 왈츠나 녹턴류를 다시 잡기에는 성향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건 아닐까 우려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그 다음은 베토벤이라고만 정하고, 일단 곡들을 찾아들었다. 지금 내게는..
: 못났다, 못났다, 지지리도 못났다. 적어도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리고 못하는 건 과감하게 포기하거나, ‘신포도’(feat. 이솝우화)라며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들여 겨우 평균 수준에 다다를 피아노며 미술이며 등등에 굳이 노력하고 싶지 않았거나, 어쩌면 칭찬을 듣고픈 마음이 더 커 애시당초 잘하는 것만 더 잘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어렸을 때는 필수과목을 곧잘 했고, 책 쟁여놓는 엄마 덕에 무한독서 간접경험 충만으로 대충의 위기 상황은 두루뭉술 해결됐고, 늘 발랄명랑이어서 이렇다 할 어려움은 달리 없었다. 만약 학교에서 피아노와 100미터 달리기가 필수과목이고 시험과목이었다면, 그래서 그거로 등수 매겨 교무실 복도 칠판에 전교 1등부터 쭈욱..
: 그동안 버텨온 빵꾸야, 수고했다, 오늘은 안아줄게. 한때 ‘작가’를 하겠다며 작파하고 들어앉아 쥐꼬리만한 퇴직금으로 연명하며, 방송국 3사 공모전만 바라보며 하루 종일 노트북과 씨름하던 때가 있었다. 게다가 작가반 수업을 같이 듣던 언니들이랑 작업실도 냈던 터인지라, 온통 관심은 우리가 과연 공모전에 입상하고, 이후에 작품도 써내는 작가가 될 것인가, 즉, 팔릴 작가가 될 것인가였고, 누구도 앞날을 알 수 없고, 수학공식이 아닌 이상 정답이 없는 이 세계에서 엉덩이 무겁게 끝까지 ‘버티’면 된다는 결론들을 이끌어내면서, 뭔가 씁쓸함을 달래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끝까지 버틴다’는 데 대한 첫 경험인 것 같다. 요즘 용어로 바꾸자면, ‘존버’였을 터인 한없는 묵묵함과 성실함과 고단함..
: 다고 생각했는데, 체르니 30을 2년이나 잡고 있었다. 1월 내내 야근이며, 2월 연휴며 여튼 레슨 시간이 가뭄에 나는 콩만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바야흐로 어제도 2주만의 레슨을 가는 중인데, 대개는 레슨보다 일찍 도착해 손을 풀고, 악보 흐름도 좀 더 보고, 맨날 틀리는 곳 한두 번 더 짚어보고 하는 수순인데, 어제는 레슨시간 맞춰 가기도 빠듯했던지라, 대략 잘해보려는 건 포기하고, 레슨이나 취소하지 않게 됨을 감사하자며 올라갔다. 선생님은 나를 기다리다가 오늘도 안 오는가보다며 나가시는 중이었고, 문 잠그는 선생님과 딱 부딪혀, 고대로 레슨실로 올라가 악보를 펼쳐들고 바로 쳤더랬다. 나는 레슨 전에 풀어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선생님은 '손을 푼다'는 표현을 쓰시는데, 나는 손뿐만 아니라,..
: 히잉. 안 그래도 피아노 앞에 앉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데 말이다. 한동안 생계형 업무가 무지하게 바빠서 그 핑계로 몽땅 제쳐두고 일단, 주구장창 일만 했다. 그러다가 이제 2월이 되고, 연휴가 되니 슬슬 한해 계획도 세우고, 그동안 못했던 피아노도 좀 쳐보고, 게다가 발레 작품반도 다시 시작하고, 수영도 조금 나아지려고 점심시간도 쪼개 쫓아다니고 있다. 그런데, 클났다, 올해 책 좀 읽자고 대문짝만하게 수첩에 썼는데, 그러고 보니, 걱정이 피아노다. 있는 시간 몽땅 투자해도 부족한 판인데, 그걸 또 쪼개 책을 읽다니... 아, 나는 대체 왤케 욕심이 많은걸까. ㅠㅠ 어제도 새로 생겼다는 세종시립도서관에 가서 좀 앉았다 오는데, 책에 대한 욕구는 포근해지는 반면, 피아노 연습을 못한 데 대한 죄책감은..
: 바흐의 인터메쪼 중인데. 궁금한건, 지금 내가 칠 수 있는 것보다 서너 배는 어려워 보이는, 그러니까 손가락별로 유지해야 하는 연음이 대박 많고, 화음도 많고, 손가락이 안 닿아 버리는 음표도 많은, 익히는 데만 하세월이 걸리는 이 곡을 치는 게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될까? 어쩌면 그보다는 좀 쉽고, 조금 치다보면 손가락에 익숙해지고 머리에 좀 남는 곡을 좀 더 연습해 보는 것이 일단 스트레스 덜 받고, 진도도 후다닥 나가고, 곡 치는 분위기도 내면서 훠월씬~ 재밌지 않을까? 그런데 왜 나는, 레슨 시작한 지 한 달이 넘도록 계속 같은 페이지인 이 곡을 주구장창 연습하고 있는 걸까. 도전의식인가? 손가락 연마인가? 참을성 기르기인가? 아, 모르겠다, 인터메쪼, 짱 어렵다. 다만, 치다보면 뭔가 마음이 ..